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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w: 예레미야 강해 10(렘 3:19-25)

2009년 9월 30일 예레미야 강해 10
본문: 렘 3:19-25

[19]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지난주에는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긍휼을 베푸신다며 하나님이 몇 가지 중요한 축복을 제시했습니다. 더 이상 언약궤가 필요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아니라 각 사람의 심령 속에 남편으로 양육자로 임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분단된 남북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처럼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이 서로 화해하고 통합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은혜의 약속과 당부의 말씀입니다. 19절을 보니,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뉘앙스를 파악해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무리 못나게 굴고 부모의 속을 썩여 의절해도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런 육신의 부자 관계보다 더 질기고 강합니다. 육적인 부자관계는 이 땅에 살 때만 유지되는 한시적인 관계이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영원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우상과 간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밥 먹듯 배신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의 직위에 두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와 맺은 인연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자복하지 않으면 징계를 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사랑의 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는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이해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구실로 불효를 저지르면 징계 받습니다.

19절 중반절을 보면, ‘아름다운 기업인 귀한 땅을 네게 준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름다운 땅을 유업으로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할 때도 땅을 약속하셨고, 모세를 보내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할 때도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의 땅은 천국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에서 유랑했듯이 우리도 광야 같은 세상을 유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신 말씀은 우리가 가나안을 향해 가며 범죄하며 영적 간음에 빠진다 해도 우리에게 당초 약속하시고 우리의 유업으로 보장해 주신 그 가나안 땅은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이고 진실합니다. 아름다운 기업의 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의 천국행은 절대 취소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산상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회담할 때, 주님이 지옥 간 모세를 불러서 회담하셨을까요? 모세가 비록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천국에 못 간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 물론 천국에는 갔으나 민망했을 겁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뵙기가 송구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유업은 반드시 하나님이 베푸십니다.

어떤 경우에든 자녀의 신분을 유지하게 할 것이니, 유업의 땅을 줄 것이니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고 하십니다(19).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자꾸만 이탈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우상에게 추파를 던집니다. 20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형식상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며, 속으로는 호박씨를 깠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섬기는 척하고 뒤로는 바알과 놀아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21절 상반절입니다.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애속하며 간구한다는 것은 바알에게 애걸복걸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22절 상반절입니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배역하였으나 여전히 자식입니다. 돌아오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더 기가막히고 놀라운 것은 22절 중반절이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회개 기도문까지도 적어 주신 것입니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치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주신 것처럼 회개 기도의 샘플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 기도의 원고까지 주셨으나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다는 바벨론에게 잡혀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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