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927m: 풍성한 명절(요 6:4-13)

2009년 9월 27일 주일낮예배
본문: 요 6:4-13
제목: 풍성한 명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본문 4절을 보면 유월절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발생했습니다. 우리의 최대 명절이 금주 토요일이니 아마도 오늘쯤 일어난 사건입니다. 왜 주님은 명절을 며칠 앞두고 떡과 물고기의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다가오는 명절을 보다 풍성하고 넉넉하게 맞으라는 뜻입니다. 부디 주님의 이 깊으신 뜻 그대로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는 풍성하고 넉넉한 명절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풍성한 기적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은 주님에게는 이미 대책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에게는 이 난감한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제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주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 앞에 과제를 던져 놓으시고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답하는지를 예의 주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시험을 잘 통과하면 비로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당할 수 있음이 확인되면 그때 기적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복 받으면 복이 아니라 욕이 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시험에 제자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겠습니다. 빌립은 주님 말씀에 가장 먼저 반응했는데, 7절을 보니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합니다. 계산이 참으로 빠릅니다.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 결과 아예 불가능한 문제라고 빌립은 대답합니다. 빌립은 이해와 타산에 밝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모든 일을 치밀한 계산으로 합니다. 계산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단념합니다. 이런 사람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상식적인 사람처럼 보이나 신앙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신앙은 때로 이성도 초월합니다. 믿는 자들은 반드시 돈으로만 떡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기적으로 떡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빌립은 이성과 합리성을 앞세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님이 출제하신 문제는 수학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빌립은 수학문제를 풀듯했습니다.

다음은 안드레입니다. 8-9절입니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래도 안드레는 빌립보다는 낫습니다. 빌립은 구해 보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계산만 하고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안드레는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사람들에게 가서 먹을 게 있는지를 확인해 봅니다. 그러나 안드레도 주님이 원하는 대답은 하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계산에 밝은 현실주의자요 합리주의자였다면, 안드레는 회의주의자요 비관주의자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실제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은 합니다. 떡과 고기를 찾아다니기는 하나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사람들이 훨씬 더 골치 아픕니다. 주님은 빌립 같은 현실주의자나 안드레처럼 일하면서도 부정적인 회의주의자를 통해서는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은 주님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는 준비에 미흡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아이입니다. 9절을 보니,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나옵니다. 이름 없는 한 아이가 자기의 도시락을 바친 겁니다. 그러니 안드레가 비웃을 만하지 않습니까. 굶주린 사람이 장정만 해도 5천 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말이 안 됩니다. 당시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자기의 초라한 도시락을 주께 바쳤을까요? 빌립처럼 계산하고 바쳤을까요? 계산했으면 못 바칩니다. 그럼 안드레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바쳤을까요? 그랬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 아이는 단순히 주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님이 먹을 것을 찾으시니 초라하지만 자기 가진 것을 드린 겁니다. 계산하거나 회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가 계산하거나 회의했다면 절대 못 드렸을 겁니다. 그냥 주님 말씀에 단순히 반응한 겁니다. 남 의식도 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한 겁니다. 이게 자기 몫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빌립은 묵살하고 안드레는 비웃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을 주님 앞에 내 놓으니, 뜻밖에도 주님은 이 초라한 헌상을 가지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계산 빠른 빌립도 아니고 부정적인 안드레도 아니라 말씀에 단순히 복종하고 결단한 한 아이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물론 주님이 최소한의 오병이어가 있어야만 기적을 베풀 수 있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가 없어도 얼마든지 떡과 고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다만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고 싶으신 겁니다. 따라서 주님이 받으시는 것은 한 아이의 도시락이 아니라 오병이어에 담긴 주님에 대한 애정, 순수한 충심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따라서 오병이어를 부풀려 5천명을 먹이신 게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굶주린 그들을 먹이신 겁니다. 주님은 중심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시지, 우리가 제공하는 질료를 소재로 삼아 기적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보리떡 하나면 어떻고 물고기 한 마리면 어떻습니까?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거기에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먹을 것을 찾고 계신 주님께 여러분의 중심을 담아 오병이어를 바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놀라운 기적을 베푸셔서 정말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을 보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빌립 같은 이성주의자나 안드레 같은 회의주의자는 버리십니까? 주님은 끝까지 그들을 챙겨서 데리고 다니십니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는 회의주의자와 이성주의자들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기적은 비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반자연적이거나 비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적은 논리적이고 상식적입니다. 주님은 자연의 순리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열두 광주리가 아니라 백 광주리를 남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신 것은 이성주의자와 회의주의자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주님의 기적은 다 이렇습니다. 주님이 언제 돌로 떡을 만들고, 나무로 물고기를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보리떡으로 더 많은 보리떡을, 물고기로 더 많은 물고기를,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왜 오천 명을 못 먹입니까? 보리를 심고 또 심어 5천명을 먹일 분량을 만들고, 물고기도 양식하면 왜 못 먹입니까? 문제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장에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요즘 우리는 유전자 조작이나 양식 기술을 통해 수확기를 단축시킵니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오병이어로 5천명 못 먹이시겠습니까? 주님은 오병이어를 통해 우리가 더는 회의하거나 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배려하십니다. 주님의 기적은 이성적인 겁니다. 주님의 기적이 비합리적이라고 해서 못 믿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억지입니다. 더는 회의와 불신앙에 빠져 있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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