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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9월 23일 예레미야 강해 09<br>
본문: 렘 3:16-18</p>
<!-- paragraph:p0002 -->
<p>[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p>
<!-- paragraph:p0003 -->
<p><br>
유다의 영적 행음을 격렬하게 성토하신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자복하면 긍휼을 베푸시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되어주겠다고 하시고, 너희를 양육할 목자를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난주까지의 내용입니다.</p>
<!-- paragraph:p0004 -->
<p>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첫째는 언약궤가 필요 없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16). 구약 시대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만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임재하셨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에, 그 중에서도 성전, 성전 중에서도 성소에, 그 중에서도 지성소에, 그 중에서도 언약궤에 임재 하셨습니다. 거기에 임재하셔서 모든 백성을 다 만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의 대표인 대제사장만, 그것도 일 년 중 대속죄일에 한 번만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요 양육하는 목자면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일 년에 한 차례만 지성소에서 대제사장만을 만나는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언약궤가 필요 없게 하겠다고 합니다. 명실상부한 남편과 목자가 되어주겠다는 겁니다. 우리와 동고동락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각자가 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임재하시면 더 이상 대제사장도 언약궤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만인제사장을 얘기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놓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 말은 길이 터졌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지성소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 이미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 각자가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뵐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좌정하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으면 강림하실 수 없습니다. 왜 언약궤에만 임재하셨습니까? 그곳은 거룩하게 성별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 다음에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살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17절입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좌가 되게 하겠고, 백성들이 그리로 모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다양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의 모습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 살건 하나님의 지상보좌인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복됩니다. 악한 마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면 자신의 완악한 뜻대로 살겠습니까? 17절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모인다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성전 중심으로 모여야,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야 복됩니다. 그래야 완악한 자기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심한 영적 간음에 빠졌어도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성전을 구심으로 삼고 살도록 해주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제1세계 기독교 국가들이 한 때는 신앙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문화의 뿌리는 기독교입니다. 지금은 너무도 세속화되었지만 과거에는 다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어떤 마을이나 도시를 가도 거기의 중앙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을 구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때는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태는 교회를 중심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의 중심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마지막 세 번째는 남북이 하나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18). 다윗과 솔로몬 시대가 이스라엘의 최대 전성기였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는 최악이었습니다. 남북 분단된 상태에서 이미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했고, 남쪽 유다도 바벨론에 망할 징조인데, 국민들은 누구도 그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는 남쪽 유다의 상황이 풍전등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남북이 하나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얼마나 황당한 약속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통일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겁니다.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진지하게 들었겠습니까? 그들은 손톱만큼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말씀에서 우리의 통일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힘이 월등해서 통일된다면 국토의 통일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통일입니다.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남쪽 유다가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이상적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화해를 이루어 주실 겁니다. 이 한반도에서 우리가 잘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레미야의 시대 때보다 상황이 더 좋습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는 도저히 통일이 불가능하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통일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 문제를 깊이 생각하십시다.<br>
<!-- paragraph:p0007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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