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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9월 20일 주일낮예배<br>
본문: 눅 13:6-9<br>
제목: 무화과의 계절</p>
<!-- paragraph:p0002 -->
<p>[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 66권은 주후 397년에 기독교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회의에서 정경으로 공인했습니다. 그 전만해도 교회에서 회람되던 문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카르타고 회의에서 66권만을 정경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카르타고 회의에는 어거스틴이 참석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약성경은 39권인데, 이것은 사실 유대교의 유산입니다. 우리가 선별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가 정경으로 쓰고 있던 것을 계승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신약인데, 이것은 기독교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검증하고 채택하는 과정이 길고 복잡했습니다. 27권만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권이지만, 도마복음, 애굽인의 복음, 열두 사도의 복음, 맛디아 복음, 야고보의 원복음, 바실리데스 복음, 유다 복음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런 책들도 정경 채택이전에는 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배제되었는데, 출처가 불분명했고, 내용이 이상했고, 무엇보다 사도들의 지지를 못 받았기에 배제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직접 모시고 다녔기에 그들의 권위와 보증은 대단합니다. 사도들의 보증이 정경 채택의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그런데 외경 가운데 맛디아 복음이 있는데, 거기에도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물가에 서있으면서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있었다. 주인이 그 나무를 베려하자, 나무는 저를 다른 곳에 옮겨 주시고, 그럼에도 열매를 못 맺으면 찍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물가에 있는 네가 열매를 못 맺는데 다른 데로 옮긴다고 열매를 맺겠느냐 하며 당장에 찍었다고 합니다.’ </p>
<!-- paragraph:p0005 -->
<p>오늘 본문인 비유의 무대는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무화과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도 심었는데, 포도와 무화과는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합니다. 무화과는 뿌리 힘이 너무 세서 너무 촘촘히 심으면 안 되고 드문드문 심어야 한다고 합니다. 포도와 무화과는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과일입니다. 무화과는 에덴에도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을 가렸습니다. 유대인에게 무화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닙니다. 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무화과를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삼습니다. 오늘 본문도 유대인들의 무화과에 대한 평소 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는 우리나라에서 지금부터가 제 철입니다. 유대인들은 6월부터 9월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전남 영암이 주산지입니다. 8월 9월은 무화과의 철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무화과는 심고 3년이면 열매를 수확한다고 합니다. 다른 과목에 비하면 수확이 빠릅니다. 오늘 본문의 무화과는 심은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열매를 수확할 때가 되었음에도 열매가 없자, 다시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럼에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화가 나서 포도원 지기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7). 열매를 맺어야 할 때로부터 3년이 지났다는 겁니다. 그러자 포도원 지기가 금년에도 그대로 두고 보자고 주인에게 청합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합니다. 주인은 포도원 지기의 청을 접수합니다. 그래서 심판을 한 해 더 유예합니다. 이점이 맛디아 복음과 다릅니다. 맛디아 복음에서는 더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주인이 포도원 지기의 탄원을 수용합니다. 그래서 심판을 한 해 더 유예합니다. 여러분 맛디아 복음이 탈락되고 누가복음이 채택된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누가복음이 더 정확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책이었기에 정경으로 채택된 겁니다. 또 한 번 속아주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매정하고 비정한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맛디아 복음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벌써 우리는 찍혀 버림을 당했을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포도원 주인은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입니다. 열매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큰 만큼 열매를 맺지 못했을 때 그 좌절도 크고, 그러나 끝내 열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포도원 지기의 간청을 듣고 한 해를 더 참아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포도원 지기는 예수님입니다. 중보자입니다. 무화과에 온갖 정성을 다 쏟는 포도원 지기가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셔도 주님은 절대 분노하지 않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온갖 정성을 다 쏟아가며 하나님의 분노를 가로막고 서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입니다. 무화과는 누구입니까? 주님 당시에는 유대인이고 오늘 이 시대는 우리들입니다. 중보자이신 주님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죽었습니다. 어떻게든 주님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을 달래고 우리를 격려하면서 한 해 한 해 심판을 유보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참으면서 말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여러분,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맙시다. 예루살렘 가두에 서있던 잎사귀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를 기억하십니까? 주님이 시장해서 무화과나무에 가서 열매를 찾았는데,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실망해서 그 나무를 향해 저주하자 그 나무가 뿌리 채 말라버렸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해서 시장하신 주님을 좌절케 했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결국 저주를 받았습니다.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포도원 지기가 ‘일 년만 더 정성을 다해 보자고 한 뒤 그래도 열매를 안 맺으면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일 년이 얼마간의 시간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위기의식을 가집시다. 올해라도 열매를 맺읍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은 철회됩니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번의 은혜의 시간, 심판이 유예된 기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인지 모릅니다. 애타게 열매를 기다리는 주인과 포도원 지기의 기대에 부응합시다. 더는 무성한 잎사귀만으로 주님을 기만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br>
<!-- paragraph:p000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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