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0n: 달리다굼(막 5:21-24, 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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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0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막 5:21-24, 35-43
제목: 달리다굼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41절에서 ‘달리다굼’하셨습니다. 뜻은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이 선언은 죽은 소녀를 그 죽음의 심연으로부터 불러낸 주님의 육성인데, 주님은 죽은 소녀를 불러내셨고,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으로부터 달리다굼의 기적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무엇보다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으로부터 달리다굼의 기적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22-23절입니다.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유대인에게는 성전이 있고, 회당이 있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 있었고, 회당은 마을마다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예배했지만, 지방 사람들은 회당에서 안식일날 예배했습니다. 거기서 율법을 배우고, 마을 행사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루살렘 중심으로, 지방 사람들은 회당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회당에는 8명의 장로가 있습니다. 이들이 회당의 운영위원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추대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회당장입니다. 그러니까 회당장이라고 하면 지독한 율법주의자요, 정통 유대교 지도자입니다. 장로 중에서도 장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야이로는 그런 지위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더구나 이때는 아직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입니다. 예수님은 정통 랍비 출신도 아니고, 시골 목수 출신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와 엎드린 것은 당시 사회의 분위기상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이런 문제에 개의치 않고 주님께 진심으로 부르짖었습니다. ‘내 딸을 살려주십시오. 내 딸에게 안수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에게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겠다는 신념뿐이었습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 자기의 집으로 향하는 야이로의 모습입니다. 24절입니다.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야이로는 굉장한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주님이 자기의 호소를 접수했고, 지금 자기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주님이 자기 딸을 당장에 고쳐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그는 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4절까지는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25절에 엉뚱한 사람이 끼어듭니다.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끼어듭니다. 결정적인 변수가 생긴 겁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붙잡고 지체하고 계십니다. 그때의 야이로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자기 집인데, 그 사이에 혈루증 여인이 끼어들어 지체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의 마음이 초조하고, 늑장 부리는 주님이 원망스럽고, 끼어든 혈루증 여인이 야속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집에서 기별이 오기를, ‘딸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그 순간 와르르 무너졌을 겁니다. 아직도 주님은 혈루증 환자를 붙잡고 있는데 딸이 죽었다고 합니다. 야이로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야이로의 슬픔을 아시고, 즉시 붙잡아 주십니다. 36절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러분, 언제나 우리는 이점을 두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고 해서 기쁜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지체될 수도 있고, 본의 아닌 변수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절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웃을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각종 시험이 다 닥칩니다. 문제는 이게 우연이 아닙니다. 용의주도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 과정과 시련, 아픔과 실패를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여전히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들리고 넘어지려고 할 때 주님은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믿기만 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수습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동행하는 한, 너의 염려는 내 몫이라는 겁니다. 너의 몫은 믿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딸이 죽었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인데, 주님은 ‘믿기만 하라’고 합니다.
야이로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 다닌 사람도 아니고, 정통 유대인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마 회당에 근무하면서도 주님을 믿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과정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데도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의 말씀을 비웃었으나 야이로만큼은 주님의 당부 그대로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주님이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하십니다. 그랬더니 죽은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야이로의 이런 여정은 죽은 딸을 다시 살리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여러분 어떤 장애가 닥쳐도, 주님이 혹 늑장을 부리셔도, 중간에 딸이 죽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의 당부대로 믿기만 하십시오. 나머지는 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죽은 딸을 되살리시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비웃어도 여러분은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야이로는 그래서 죽은 딸을 살렸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오늘 이 본문은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계시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길을 가시며, 때로는 혈루증 앓는 불쌍한 여인을 고치시기도 하고, 때로는 낙심천만해 하는 나를 향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위로하시고, 나중에는 우리의 죽음 문제까지도 해결하시는 내 삶의 진정한 해결사입니다.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처럼 주님과의 동행에 끝까지 성공하십시다. 너무 조급해 하지도 마시고, 시험들지도 마시고, 좌절해서 중간에 포기하지도 맙시다.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면 반드시 죽은 내 딸을 주님이 살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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