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913n: 현자의 기도(잠 30:7-9)


2009년 9월 13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잠 30:7-9
제목: 현자의 기도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솔로몬 시대의 현자요 랍비였습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 기도 마음에 드십니까? 성에 차십니까? 우리 중에 아굴의 기도에 만족할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부하게 말라는 기도에서 막힙니다. 우리 기도가 표현이야 어떻든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게 우리 기도라면, 어떻게 이런 기도가 마음에 차겠습니까. 배부르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치고 기도하는 사람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치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 찾기 어렵습니다. 기도원에 가보면 배부른 사람은 없습니다. 다 실패하고 병든 사람들입니다. 멀쩡하고 배부른 사람들은 다 도박장이나 골프장에 갔습니다. 너무 가난해도 문제입니다. 덕이 안 됩니다. 충분히 주님께 누를 끼칠 수 있습니다. 잠언서가 기록된 게 주전 950년,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인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화론을 안 믿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배고프면 도둑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따라서 부하게도 말고, 가난하게도 말라는 아굴의 기도야말로 얼마나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꿰뚫어본 현자의 기도인지 모릅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만을 먹게 해 달라는 이 기도는 얼마나 진솔하고 소박하며 구체적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양심적으로 이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 기도를 내 기도로 삼을 자신이 없습니다. 이 기도로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굴이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즉 이 기도는 내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염두에 둔 기도입니다. 내가 천 년 만 년 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절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또 가난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예외 없이 오래지 않아 다 죽기 때문입니다. 이 아굴의 기도는 죽음을 깊이 인식한 진지하고 엄숙한 기도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입니다. 손톱만큼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다가 어느 날 덜컥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음은 결코 건강순도 나이순도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순서입니다. 영화배우 장진영 씨를 보십시오. 30대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아굴은 ‘내가 죽기 전에’라고 했습니다. 생전의 내 삶의 내용이 죽음 이후 나의 영원한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진정한 현자의 기도입니다. 나이 믿고, 건강 믿고, 돈 믿으며 하나님을 모른다 하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욕 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모한 생활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꼴입니다. 곡간을 헐고 새로 짓고 나서 흐뭇해서 ‘내 영혼아 여러 해 먹을 것을 쌓아 놓았으니 이제 쉬자’고 하니까, 오늘 밤에 너를 데리고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올해도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는 아굴의 기도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할 게 뻔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우리에게 허세를 부리며 살라고, 거짓말하고, 사기를 치면서 살라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 벌라고 합니다.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 합니다. 돈이 영원한 행복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자 아굴은 돈도 좋고 다 좋은데 우리는 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돈 벌어 세상을 즐긴다 해도 오래지 않아 우리는 다 죽는 존재임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몇 분 뒤에 죽는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좋은 밥상을 받아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죽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기 전에 허탄한 말에서, 가난에서, 부유함에서 지켜달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주님이 언제 우리를 부르셔도 준비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도입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이 현자의 기도를 깊이 생각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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