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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8월 30일 주일낮예배<br>
본문: 습 3:13-20<br>
제목: 남은 자</p>
<!-- paragraph:p0002 -->
<p>[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p>
<!-- paragraph:p0003 -->
<p>므낫세 왕의 폭정으로 남 왕국 유다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는 악명 높기로 유명한데, 그가 유다를 큰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나라 전체가 부패와 타락으로 병들었습니다. 그런 사정이 므낫세 아들 아몬과 요시아 왕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신앙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태양신을 예배했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p>
<!-- paragraph:p0004 -->
<p>그런데 놀랍게도 만신창이가 된 유다에도 소수 믿음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기도하는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13절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소수의 남은 자마저 지칠 대로 지친 겁니다. 그래서 그 남은 자들마저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은 기운을 내라는 말입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쓰러져 절망적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오직 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차라리 저를 이쯤에서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7천을 준비했으니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남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푸른교회의 남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스바냐 시대의 남은 자들처럼, 엘리야처럼 우리도 많이 지친 듯합니다. 그래서 자주 좌절합니다. 자주 고개를 떨굽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14절을 보면 ‘노래하라’고 합니다. 무슨 이유로 우리 남은 자에게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p>
<!-- paragraph:p0005 -->
<p>먼저 우리 남은 자는 용서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5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라고 합니다. 그러니 절대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자주 좌절하고 절망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편이나 현실 사정 때문이 아니라 실은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비겁해집니다.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치면 내 죄가 생각납니다. 졸지에 변을 당해도 죄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형벌을 제거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에 의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일 때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아직 회개하기도 전에, 우리가 아직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알기 전에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일방적으로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겁니다. 이런 법이 없을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절대 낙담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 용서는 결코 회개의 열매가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도 아닙니다. 우리의 헌신에 대한 보상도 아닙니다. 믿음의 반대급부도 아닙니다. 우리의 죄 용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서 죄 용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죄 사함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을 때 받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한 날은 이미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최초로 깨달은 날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로써 성취하신 죄 사함에 내가 최초로 반응을 보인 날이 회개한 날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은 주님의 주권적인 긍휼이지 절대 회개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우리 남은 자들은 아무리 환경이 절망스러워도 절재 손을 늘어뜨려서는 안 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죄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죄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죄를 무조건 용서받았다는데 다른 어떤 것이 우리를 좌절시킬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죄 용서함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절망과 좌절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죄 용서함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모든 것은 상대화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좌절보다 노래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6 -->
<p>다음은 여호와께서 남은 자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내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7절 상반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이십니다(17).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상 그 무엇을 두려워해서 좌절하거나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신명기 32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킨다고 했습니다. 눈동자는 우리 신체 중 가장 여리고 예민한 곳입니다. 사람 눈에는 약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리, 색채를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그래서 눈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겹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물샘이 습도를 제어하고, 눈꺼풀이 자동으로 개폐됩니다. 눈썹도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를 보호하듯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도 자주 좌절하고 실망했습니다. 한 번은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자 부인인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놀라 누가 세상을 떠났냐고 묻자,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루터가 무슨 망발이냐며 역정을 내자, 카타리나가 반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왜 당신은 그렇게 좌절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돌아가신 모양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남은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떠십니까? 구원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그토록 낙심하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돌아가신 겁니까?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어깨를 늘어뜨리지 마십시오. 함께 하시는 구원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하십시오.</p>
<!-- paragraph:p0007 -->
<p>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17절 하반절을 보니,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이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즐거워하며 노래까지 부르십니까? 세상에 어디 사랑할 사람이 없어 나 같은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신단 말입니까. 불가사의하고 황송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닙니다. 다 진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p>
<!-- paragraph:p0008 -->
<p>그런데 우리는 왜 우울합니까? 왜 낙심천만해 합니까? 왜 한숨짓고 포기하려고 합니까? 주님이 싫으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못마땅하십니까? 대체 언제까지 주님만 우리를 짝사랑하게 하시렵니까? 우리는 절대 절망할 수 없습니다.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는 결코 어깨를 늘어뜨릴 수 없습니다. 20절은 결론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를 용서하시고,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때에 나를 모으고,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주님이 말씀하는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지금 무슨 일로 좌절하십니까? 힘을 내십시오. 그때가 되면 주님이 다시 놓아주십니다.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십니다.<br>
<!-- paragraph:p000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 그때는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뜨거운 음성을 들으시고 다시 용기를 내십시오.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으십시오. 그래서 이 가을이 은혜와 축복으로 풍성하기를 빕니다. <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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