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영혼을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

긴 여름이었습니다. 그토록 지독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이젠 뚝 그쳤고, 어젯밤에는 귀뚜라미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이미 처서도 지났고 칠석도 엊그제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계절이라는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 휴가 때도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도 찾았고, 선산도 둘러봤습니다.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며 친척들도 방문했고, 45년 전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옛날 아버님이 채굴하시던 폐광에도 가봤습니다. 또 기도원에 올라가 철야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런 일정들은 제게 늘 기쁨만이 아니라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로는 아픈 회한으로 가슴을 누르기도 하는데 매년 그랬듯 휴가의 피날레로 찾는 미술관만큼은 올해도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의 <르누아르展>은 이번에도 저의 기대와 설레임을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르누아르보다 더 밝고 따뜻한 색깔로 사물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그리는 화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19세기 후반 미술사적으로 가장 극심한 격변기를 산 대가였지만 비극적인 주제를 그리지 않은 유일한 화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5천여 점의 유화들이 모두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예술철학에 충실한 작품들로 일관되게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인 <행복>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누구도 불행하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고 기뻐하는데 그것이 바로 르누아르가 꿈꾸던 세상이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이상 세계였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뵌 그의 대표작 <그네>와 <시골 무도회>에서도 엿보이듯 그의 그림에 묘사된 현실은 언제나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듯한 세상 속의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오직 행복으로만 가득 찬 그의 작품 세계와는 달리 실제 그가 살았던 현실은 늘 고단하고 궁핍했습니다. 물감 살 돈이 없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제대로 못 그릴만큼 가난에 허덕였고, 말년에는 류머티즘으로 붓조차 들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작품은 오히려 더욱 원숙해져갔고, 생활고로 인한 걱정이나 우울은 커녕 더욱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의 환희와 행복을 화폭 가득 쏟아 냈습니다.

굴곡진 세상사의 모든 어두움을 뒤로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빛과 색채의 화려함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르누아르,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처럼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행복의 빛들은 그것이 어두움을 뚫고 나온 것이었기에 더욱 아름답고 위대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언제나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2009년 여름휴가는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와의 만남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