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9m: 다 진멸하라!(수 1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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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9일 주일낮예배
본문: 수 11:21-23
제목: 다 진멸하라!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많은 분들이 성경을 보며 갖는 의문이 바로 이겁니다. 광야 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엄하게 명령하신 것은 그 가나안 원주민들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신 겁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다 죽이고, 심지어 우양이나 나귀 새끼 한 마리도 살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0장과 오늘 본문인 11장을 보면 참혹한 장면이 수 없이 나옵니다. 10장 28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2-3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35절입니다.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7절입니다.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40절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가나안을 다 진멸했다고 나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잔인한 명령을 내렸을까요? 다 죽이지 않고 항복만 받아 내도 되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은 비정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는 세밀히 살펴야 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다 진멸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23절은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다 시행해서 전쟁이 끝나고 점령한 가나안을 지파대로 배분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2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이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온 산지와 성읍에서 가나안 원주민인 아낙 자손을 다 진멸했다고 해놓고 가사, 가드, 아스돗에는 남았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을 보면 ‘약간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 표현이 원문에 가깝습니다. 사실 약간 남겼습니다. 좀 남긴 채로 전쟁 끝났다고 선언한 겁니다. 당장에는 그렇게 넘어가도 괜찮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훗날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습니다.
우선 ‘가사’입니다. 여호수아 다음에 나오는 성경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 16장 1절을 보면, ‘삼손이 가사에 가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기생이 바로 들릴라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히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영웅이요 사사요 나실인이었던 삼손이 일개 가사의 기생 들릴라에게 머리를 깎이고 두 눈이 뽑혀 짐승처럼 연자맷돌 돌리다가 자폭했습니다. 자기가 묶인 다곤 신전의 기둥을 넘어뜨리며 거기 모인 3천명의 블레셋 사람들과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성경이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찍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을 다 수행했다면 훗날 엄청난 비극이 있었겠습니까? 남겨둘 때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삼손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삼손이 가사에게 붙잡힌 겁니다. 공교롭게도 ‘가사’라는 지명의 뜻은 ‘강한 곳’입니다. 삼손은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남겨 놓은 그 보잘 것 없던 가사가 이스라엘의 가장 강한 자를 파멸한 강한 곳이 된 겁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이 다 진멸하라고 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심하다 생각지 마십시오. 적당히 지나가면 결국 가사에 발목을 잡히고 머리를 깎이고 몰락합니다. 예수 믿은 사람들은 내 안의 원주민을 가혹하게 진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발목 잡혀 두 눈이 뽑힙니다. 내 안의 원주민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심하다고 생각하거나 잔인하다고 생각지 말고 하나님이 진멸하라 하실 때 뿌리 채 뽑으십시오.
다음은 ‘가드’입니다. 가드에도 원주민을 남겼습니다. 가드는 어떤 화근이 됩니까? 사무엘상 17장 4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8절 이하입니다.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가사에서는 들릴라가 나오더니, 가드에서는 골리앗이 나왔습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제멋대로 모욕하고 조롱하는데 사울 왕은 그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처음에 여호수아가 다 진멸했다면 왜 가드에서 골리앗이라는 괴물이 나왔겠습니까? 적당히 방치하고 넘어갔던 가드가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직면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드를 용납하지 마십시오. 결국 거기서 골리앗이 나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할 때 신앙을 첫째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키 크고 잘생기고 좋은 직장 가지면 됩니다. 신앙 따지지 않아도 당장에 웨딩마치 울리고 달콤한 신혼시절 보내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마치 가드를 남겨두고도 전쟁 끝났다고 선언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던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그러나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이면 거기서 골리앗이 나옵니다. 그래서 아내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하며 하나님을 서슴없이 모욕합니다. 그것은 가드를 처음부터 용납했기 때문에 당하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가드를 남기면 안 됩니다. 다 진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반드시 골리앗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아스돗’입니다. 아스돗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어떤 걸림돌이 됩니까?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적인 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벤에셀 전쟁입니다. 에벤에셀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의 이스라엘의 성지입니다. 그런데 그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대패합니다. 한 자리에서 3만이 몰살합니다. 이스라엘 전사에 그런 치욕적인 전쟁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전쟁은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부가 이스라엘 군을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까지 들고 나갔다가 그 법궤 마저 빼앗긴 전쟁입니다. 사무엘상 5장 1-2절입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은 요새라는 뜻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겨 하나님이 우상 신전에 들어간 겁니다. 물론 그날 밤 다곤의 팔다리가 꺾이는 일이 벌어지고, 온 나라에 역병이 돕니다. 그러자 자진해서 법궤를 돌려 줍니다. 이게 다 아스돗을 진작 진멸했어야 하는데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 아스돗에 하나님 마저 빼앗긴 겁니다. 여러분의 아스돗을 용인하지 마십시오. 비록 아픔이 따르더라도 진멸하십시오.
왜 주님이 그토록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서둘러 평화를 선언하지 마십시오. 남겨둔 가사, 가드, 아스돗을 다 진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가사, 가드, 아스돗 때문에 내가 망합니다.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결단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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