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809n: 아브라함과 롯(창 13:5-15)

2009년 8월 9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창 13:5-15
제목: 아브라함과 롯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대조적입니다. 두 사람의 믿음, 세상살이의 방식이 차이 납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자기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7절을 보니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두 사람이 분가하기 전이어서 벧엘에 함께 살았는데, 땅이 좁아서 두 사람 휘하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겁니다. 그 종들 간의 마찰 때문에 집안에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8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제안이 나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제안한 가장 큰 이유는 7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그 땅에는 아브라함과 롯 외에도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이 함께 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서로 다투면 이방인에게 덕이 되지 않으니까 제안을 한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니까 아브라함이 롯에게 다투지 말자고 제안한 겁니다. 교인끼리 서로 싸우면 믿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급하게 아브라함이 종들의 싸움을 진화하고 나선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늘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내 영광이나 내 이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익이 최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롯의 선택은 언제나 자기의 이익과 영광이었습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존재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해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편리나 영광이나 이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게 아무리 이득이 된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포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참 신자입니다. 그런데 내게 이익이 되고 내게 영광이 되면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9절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참으로 대단한 인품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관대한 사람입니까. 그는 늘 이렇게 형제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웃에게 먼저 기회를 주었습니다. 자기는 남이 선택하고 남은 것을 택했습니다. 맨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챙기고, 그 다음은 이웃을 챙기고, 그리고 나서야 자기 몫을 챙겼습니다. 신자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말만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예라면서 내 이익을 먼저 챙깁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리 믿음의 귀감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롯을 보십시오. 삼촌이 우선권을 양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접수합니다. 본래 삼촌에게 사양하는 게 도리인데 롯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권을 주니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처럼 비옥한 소돔 평지를 차지했습니다. 10-11절입니다.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 사람의 극명한 차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실리만을 추구하며 삽니다. 롯은 세상 사랑의 전형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사랑의 모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입니다. 이렇게 살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망할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롯은 흥한 것 같으나 망했고, 아브라함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사람의 잔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그 계산은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십시다. 인간적 계산으로 헌금을 하는 만큼 손해입니다. 십일조 하면 1/10이 손해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계산법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비밀을 모르는 계산법입니다. 신앙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밑지는 게 오히려 축복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당연히 더 못한 땅을 차지한 아브라함이 더 못 살거나 더 망해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사람의 흥하고 망하는 일은 삶의 조건이나 약삭빠른 계산에 달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간섭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챙기십시오. 이웃에게 먼저 양보하십시오.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고 큰 복을 받았습니다. 계산에 밝고 약삭빠른척하며 좋은 땅을 차지한 롯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14-15절입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롯은 세상의 비옥한 땅을 보며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현실만 바라보며 살면 안 됩니다. 세상은 시간의 문제이지 심판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약속의 땅만 바라보며 사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만 바라보며 나그네 생활을 했지 한 번도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산 적이 없습니다. 군에서 가장 심한 욕은 ‘말뚝 박으라’는 건데, 우리는 이 땅에 어떻게든 말뚝 박으려고 합니다. 그게 저주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약속의 땅이 안중에 없습니다. 여러분, 약속의 땅이 영원한 겁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소돔 땅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아무리 물이 넉넉해 보여도 여기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다 망합니다. 롯의 아내 보십시오. 소돔 땅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사는 법을 아브라함에게서 깨우칩시다. 오직 인간적인 계산으로 소돔 땅을 선택하고 그 땅에 뿌리내리려고 했던 롯의 뼈아픈 실패를 기억하십시다. 롯을 보십시오. 후에 유황불에 망한 소돔 성을 겨우 탈출해서 집도 아내도 다 잃어버리고, 동굴 속에 살며 짐승처럼 살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생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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