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매미 소리

올해는 유난히 매미 소리가 극성스러워 짜증스럽다는 사람, 새벽잠을 설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기야 저도 요즘은 매미 소리를 들으며 새벽 기도회에 나섭니다. 원래 매미 소리는 입추와 말복이 교차되는 이즈음에 가장 처절합니다. 입추여서 마음이 바쁘고 말복이어서 몸이 가장 뜨거운 탓입니다. 그래도 이 분당의 매미는 서울 도심의 가로수에 붙어서 우는 매미 소리와는 달리 맑고 청량한 데가 있습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보다 더 크게 울어야 하는 도심의 매미는 한껏 데시벨을 높인 금속성 소리를 내지만 분당의 매미는 그래도 정감이 있고 친근한 시골 매미 소리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시인 안도현은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며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매미가 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맞습니다. 뜨거운 여름 목이 터져라 울어 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매미, 매미는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 암컷이 짝을 찾습니다. 암컷 매미는 벙어리입니다. 수컷의 소리만 들을 뿐 일생 소리 한 번 내보지도 못한 채 죽습니다. 따라서 수컷의 울음은 천형과도 같은 것입니다. 벙어리가 된 암컷을 위해 피를 토하듯 울어주는 수컷 매미의 사랑이 차라리 눈물겹습니다.


매미는 딱 열흘간의 치열한 생을 위해 어둡고 습한 땅 속에서 7년, 길게는 17년을 굼벵이로 사는 기구한 운명의 생물입니다. 불과 1%의 햇빛 가득한 세상살이를 위해 일생의 99%를 어두운 땅속에 갇혀 희망을 꿈꾸며 사는 생명체입니다. 오랜 세월 온갖 땅속 천적들을 피해가며 기적같이 살아 온 굼벵이가 마침내 허물을 벗고 땅 위에 나와 처절하게 울며 사랑을 찾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죽는 그 열흘간의 시한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하여 이제서야 매미 소리가 왜 저리도 절절하고 쟁쟁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또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그 모진 날들을 헤쳐 나온 매미야 말로 이 여름을 마음껏 유린하며 저렇듯 온 몸으로 울 자격이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또한 매미의 저 뜨거운 울음소리야말로 소통 부재의 시대를 환기시키는 사이렌이자 제각기 자기 소리만을 높이는 현실에 끼얹는 한줄기 시원한 찬물 같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짧은 일생만큼이나 울음소리도 비장하고 처연한 매미, 실은 사람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울면서 사랑을 찾아 나서고, 그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사랑이 이뤄지고,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때 긴 이별을 고합니다. 매미 소리가 소나기를 부른다는데 시원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이 말복 더위를 이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