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802m: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겔 47:1-5)

2009년 8월 2일 주일낮예배
본문: 겔 47:1-5
제목: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라!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어제가 올 여름 피서 행렬의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피서를 다녀오신 가정도 있고, 금주에 떠나시는 가정도 있을 텐데, 우리는 동해나 서해, 제주도 같은 피서지보다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는 피서가 꼭 필요합니다. 요즘 물놀이 공원도 많이 생겼습니다. 용인에는 캐리비안 베이도 있고, 홍천에는 오션월드도 생겼습니다. 다양한 물놀이 기구도 있고, 파도풀 같은 데서 스릴 넘치는 수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은혜의 강에서 수영하는 게 가장 복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체험한 환상입니다. 어떤 내용이냐면,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와 제단을 감돌아 성전 밖으로 흐르는데, 그게 큰 강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는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전을 통해, 제단을 통해 흘러내립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당연합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 찬양이 있습니다. 성도 간의 아름다운 교통이 있습니다. 그러니 성전 문지방 밑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솟아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표현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교회가 은혜의 강의 발원지요 원천입니다. 교회 말고 어디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솟아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사자의 지시로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의 강물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맨 처음에는 물이 에스겔 선지자의 발목까지 올랐습니다(3절). 우리는 다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각자가 느끼는 은혜의 정도와 수준은 다 다릅니다. 우리는 똑같은 은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강물에 들어섰더니 은혜의 강물이 발목까지 찼다는 것은 그가 누리는 하나님 은혜의 수위가 발목 수위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발목 신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되 발목 수준으로 체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발목 신자는 신앙생활 하는 데 발목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오래지 않아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인데도 여전히 발목 신앙이라면 문제입니다. 그저 주일날 교회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도 이런 분들 상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삐끗하면 발목을 다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다 잘한다고만 해야 합니다. 주일을 못 지켜도 이해한다고 해야 하고, 교회 나와서 예배 내내 졸다 가도 수고했다고 해야 합니다. 다른 말 했다가는 다칩니다. 가장 조심스럽습니다. 이런 분들은 항상 위태위태합니다. 절대 발목 신자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더 깊은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에스겔이 또 다시 강물에 들어가는데 은혜의 강물이 무릎까지 오른 겁니다(4절 하반절). 하나님의 은혜를 무릎 수준으로 체험하며 사는 성도입니다. 이런 신자를 무릎 신자라고 합니다. 무릎 신자는 무릎 꿇고 스스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사실은 귀합니다. 흔치 않습니다. 10년 20년 교회 다녀도 스스로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게 현실임을 감안하면, 무릎 신자인 것도 대단한 겁니다. 원래 우리 신자의 별명은 무릎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신약성경 야고보서는 야고보 사도가 쓴 게 아니라, 예수님 아우였던 야고보가 쓴 책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함께 유능한 지도자로 존경을 받던 사람입니다. 이 야고보의 별명이 낙타 무릎입니다. 밤낮 무릎 꿇고 기도해서 그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 낙타 무릎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릎 꿇고 기도할 줄 아는 신자라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또 에스겔이 강물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은혜의 강물이 허리까지 찼습니다(4절 하반절). 이런 사람을 우리는 허리 신자라고 합니다. 허리 신자는 발목을 움직여 교회를 오가고 무릎 꿇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허리를 숙여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많이 성장한 겁니다. 처음에는 교회만 오가던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하더니 이제는 허리 신자가 된 겁니다. 대단한 발전입니다. 특별히 제직이나 임직자는 허리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허리를 숙여 성도를 섬기며 교회를 받들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리가 유연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직분이 주어지면 평소에 허리를 숙이며 잘 섬기는 사람도 장로가 되면 디스크가 걸려 허리를 못 숙이고, 목도 뻣뻣해 집니다. 이상한 병입니다. 허리 숙이는 장로 본 적 있으십니까? 주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도 허리를 굽혀 형제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최후의 교훈입니다. 최후만찬 장에서 시범을 보이신 교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디스크 환자가 되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요즘은 백화점 직원이나 고급 음식점 직원, 호텔 직원들은 오픈하기 전에 허리 꺾는 연습부터 합니다. 교회도 직분자가 특히 허리를 잘 굽혀야 합니다. 하여간 허리 신자가 많아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그러나 이 허리 수위도 아직 다는 아닙니다. 5절을 보면 헤엄하는 물이 나옵니다. 물이 가득 차 헤엄쳐야만 하는 물입니다. 이게 바로 은혜 충만의 경지입니다. 은혜의 강을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수준이 우리가 바라는 최종 수준입니다. 우리는 결코 발목, 무릎, 허리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고 그야말로 은혜의 강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수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9절입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절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은혜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넘치고, 실과가 넘치며, 그 실과나무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됩니다. 이런 축복이 누구의 것이냐면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는 자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필히 은혜의 강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풍성한 축복입니까! 은혜로 충만하십시오. 유치원생처럼 날마다 얕은 물가에서 물장난하지 마시고, 은혜의 강에서 헤엄치십시오. 거기에 넉넉한 삶이 있습니다. 모든 나무의 잎사귀가 약 재료니 거기에 병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은혜의 강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생명수로 가득 차야 합니다. 너무 동해 서해만 찾지 마시고, 이 여름에 은혜의 강에서 수영하십시오. 그러면 다 복 됩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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