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2011",
  "title": "가루와 기름",
  "authors": [],
  "category": "column",
  "dates": {
    "registered_at": "2009-08-01T12:51:18",
    "original_updated_at": "2009-08-01T12:51:18",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구약 성경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여인에게 물과 떡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 왕이 아내 이세벨의 유혹에 넘어가 바알 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앞으로 수년간 가뭄이 닥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아합은 궁내대신인 오바댜를 불러 &lt;이 땅의 모든 물의 근원과 냇가로 가자.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니 내 소유인 짐승들을 잃지 않게 되리라&gt;고 합니다. 살인적인 가뭄과 기근에 처한 백성들보다 자신의 말과 노새가 더 소중했던 아합이니 당시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서 만난 과부 역시도 그 사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딱했습니다. 어디나 가뭄과 흉년으로 찌들어 있었고, 더구나 아합 왕의 수배를 받고 있던 터라 누구도 그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는데 마침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처연히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여인과 선지자가 마주친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2 -->
<p>엘리야가 여인에게 차마 못할 야박한 요구를 합니다. &lt;내게 물과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gt; 마실 물 한 모금을 얻기도 쉽지 않았지만 남은 가루 한 움큼으로 떡 한 조각을 만들어 먹고 미련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하겠다는 사람에게 그걸 자기에게 먼저 가져오라니 이 사람이 과연 선지자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p>
<!-- paragraph:p0003 -->
<p>그러나 태양은 영원히 식지 않을 기세로 대지를 불태우고, 희망은 흙먼지 속의 풀포기처럼 널브러진 현실 속에서 그 여인이 엘리야를 통해 만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lt;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gt; 여기에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실체가 있습니다. 여인은 그게 자신의 최후의 양식이었음에도 엘리야에게 내어 놓았습니다. 자신도 딱했지만 굶주림에 처한 또 다른 생명에게 남은 그 한 줌의 사랑을 내민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그렇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어둡다 해도 우리에게 나뭇가지 두어 개비만 있다면 거기에 사랑의 불씨를 지필 수 있습니다. 세상 악이 아무리 위협적이라 해도 우리에게 가루 한 움큼의 선만 있다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 절망이 아무리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처절하다 해도 기름 몇 방울만큼의 희망만 있어도 생명의 떡을 구워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러면 마지막을 준비하던 죽음의 때가 오히려 새 출발을 꿈꾸는 생명의 때로 바뀌게 될 것이고, 사랑과 평화의 기근에서 오는 갖가지 고통에서도 하나 둘 해방 될 것이며, 우리의 통과 병에는 사랑의 가루와 소망의 기름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br>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