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30428m 교회의 정체성(마 16:16-20)



20130428m

마 16:16-20

교회의 정체성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이 본문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첨예하게 논쟁을 벌이는 대목입니다. 18절 이하를 다시 봅니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가톨릭은 이 구절을 주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말씀으로 해석하여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봅니다. 왜냐면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천국 열쇠도 주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것으로 해석하고, 오늘날까지 교황을 통해 천국 열쇠가 계승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입니다. 심지어 교황은 오류가 없다고 해서, 교황무오설까지 가르칩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초대 교황이라 숭배하는 베드로조차도 완전하기는커녕 돌아서서 주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본문 아래 23절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금방 찬사를 들었는데 돌아서서 사탄이라는 호된 책망을 받습니다. 여러분, 이게 사람이요 인간 베드로입니다. 이토록 불완전한 사람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구요? 개신교는 인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해석하지 않고 그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봅니다. 그래서 천국 열쇠도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주신 권세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은 주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믿고 이해하는 가톨릭이든 그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든 교회는 그 주체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원칙은 분명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원칙입니다. 목사가 교회의 주인입니까? 장로가 교회의 주인입니까? 지금도 교회의 알력과 암투가 바로 이 싸움입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교회는 목사나 장로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황이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의인들의 공동체라고 한다 해도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인임에도 의인이라 불러주시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윤리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공동체가 교회일 수 없습니다. 타락한 죄인들의 작은 공동체인데 무슨 일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주님은 마태복음 9장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인이 쓸 데 없고, 병자에게 필요하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그리스도인 약 10%는 지금도 천국 같은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다들 입으로만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당회가 편 갈라 싸우고, 제직회만 열리면 고성이 오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좋게 얘기하는 분을 보면 덜컥 겁이 납니다. 저러다가 실망하면 큰일인데 하는 걱정입니다. 교회라는 곳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문제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에 와서 은혜는 고사하고 상처만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생활 없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기도할 때 들어왔다가 기도할 때 살짝 나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에 대해 너무 피해의식을 갖지 마십시오. 교회는 어차피 죄인들의 공동체이며 환자들의 공동체이지 의인들의 공동체, 성자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에 대해 너무 큰 기대도 갖지 마십시오. 나도 죄인이기에 남에게 아픔과 시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십시오. 좀 더 너그러워지십시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버리십시오.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이 명제는 참 오래된 것입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라는 것은 2-3세기 교부들인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등이 가르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도면대로 배를 건조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그 배는 작은 배가 아닙니다. 길이가 120미터, 너비 25미터, 높이 15미터입니다. 거의 축구장 규모입니다. 이게 3층이니 연면적은 축구장 세 개 규모입니다. 요즘 같은 유조선 모양이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 큰 배를 어디서 만들었냐면 산 위에서 만들었습니다. 조선소는 바닷가에 있지 않습니까? 물론 홍수가 나서 세상에 물이 가득차면 어차피 뜰 테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고 황당했겠습니까? 노아 편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배를 만들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일을 설명하고 앞으로 임할 심판을 이해시킬 길이 없습니다. 그랬기에 홍수가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다가 망했다고 합니다. 노아가 아무리 외쳐도 가사 전달이 안 됩니다. 달랑 노아의 8식구만 구원받았습니다. 무려 120년간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으나 한 사람도 전도가 안 된 겁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겪는 애로가 예수를 믿으면 하루아침에 좋은 일이 생기냐? 이익이 생기냐?고 물을 때, 우리 쪽에서 내놓을 게 없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심판하십니다고 하면 미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 환경이 양호한 것도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도 실은 그랬습니다. 1,2층에는 각종 짐승들이 타고 있었고, 3층에는 노아의 8식구와 양식이 적재되어 있었습니다. 창문은 하늘로 난 창문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온갖 짐승들과 사람이 1년이나 지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 1년 동안 사람과 가축이 지지고 볶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답답하고 냄새나서 못 살겠다고 그 방주에서 탈출했다면 그도 수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동안 그 배 안에서 온갖 냄새와 소음과 갑갑함을 잘 견디고 이겼기에 결국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더도 덜도 아닌 노아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환경이 열악합니다. 산뜻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방주여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노아의 방주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냄새가 나도 참으십시오. 시끄러워도 참으십시오. 답답하고 갑갑해도 견디십시오. 교회는 원래 그런 곳입니다. 절대 교회 환경이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유일한 구원의 도피성이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미션이 마태복음 28장 19-20절입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지입니다. 여기에 보면 동사 4개가 나옵니다. 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4개 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구분이 안 되지만, 헬라어로 보면 4개 동사 중 명령형이 한 개 나오는데 ‘제자를 삼아’라는 동사입니다. 나머지는 다 분사입니다. 주님이 제자 삼으라는 말씀만 명령형으로 쓰신 이유는 이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제자 삼으라는 명령의 방법이나 수단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 삼는 것이 교회의 궁극적 과제요 사명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틀린 교회입니다. 우리가 올해도 <119 전도 캠페인>을 벌이고 <2015 프로젝트>도 기도하면서 관철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기본 책무인 제자 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창립 18주년이 되었으나 너무도 미약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자 삼는 일에 무책임했다는 뜻입니다. 오늘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십시다. 우리 교회도 교회 본연의 선교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다합시다. 교회의 정체성, 교회의 동일성에 충실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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