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6m: 구름기둥 불기둥(출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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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6일 푸른교회 주일낮예배
본문: 출 13:17-22
제목: 구름기둥 불기둥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던 방식으로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거기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밝힌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17-18절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애굽에서 가나안은 지척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과 국경 하나를 그어놓고 있습니다. 이집트 북쪽이 고센 지방입니다. 이스라엘이 거기서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출애굽 할 때는 고센 지방보다 북쪽인 라암셋에서 했습니다. 팔레스틴은 이집트의 북동쪽에 있습니다. 그때는 팔레스틴 남부에는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까운 길로 가려면 블레셋 땅을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을 이용하면 불과 나흘 길입니다. 그때 장정만 60만 이었고, 다 포함하면 200만 정도 되는데, 200만이 이동한다 해도 열흘이나 길어봐야 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을 택하지 않고 홍해 광야 길로 그들을 이끄십니다. 이 광야는 시내 광야를 말합니다. 시내 광야는 이집트 동남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인도한 겁니다. 왜냐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려면 블레셋을 통과해야 하고 그래서 전쟁을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노예 살이만 했지 전쟁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기겁하고 애굽으로 돌아갈까봐 하나님은 그들을 먼 시내광야로 우회시킨 겁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그 시험을 당할 직전에 우회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스라엘이 전쟁이란 시험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시험을 당합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시험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혹독하다 해서 지레 백기를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셔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시험에서 늘 집니다. 늘 시험을 당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스로 백기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스스로 패배를 자인하고 투항해서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시험인데,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겁을 먹고 항복을 선언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굴해서 그렇습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시험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험일수록 통과하면 진급합니다. 쉬운 시험은 치러 봤자 그게 그거지만, 힘든 시험은 그만한 이익이 있습니다. 축복의 기회인 시험 앞에서 우리는 백기를 듭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하나님이 먼저 판단하시고 우리를 우회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허락한 시험인한 우리가 이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종살이만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그들이 자유인이 된 겁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연단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40년간 광야생활을 하게 한 겁니다. 가나안을 허무하고 쉽게 주면 가나안 소중한 줄 알겠습니까? 천신만고 끝에 들어가야 그 땅이 소중한 줄 알고, 하나님 은혜가 감사한 줄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지름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험난한 시내 광야로 이스라엘 백성을 우회시키십니다. 이런 예는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먼 길로 여러분을 이끄실 때 불평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잘되는 꼴을 못 보셔서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대로가 아니라 험하고 먼 광야 길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이 길을 달게 가셔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그 길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에서 언제나 이스라엘을 앞서 가십니다. 21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하나님이 하늘에서 리모콘으로 우리를 조종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 험한 광야 길을 백성들 앞에서 행보하십니다.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은 내가 너희보다 앞서 갈 테니 나를 따르라는 겁니다. 우리는 앞에 가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왜 자주 길을 잃고 방황합니까? 주님을 바짝 따라가야 하는데 항상 엉뚱한 데 살피다가 앞에 가시는 주님을 놓칩니다. 그래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겁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가십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좇아야 합니다. 18절 상반절입니다.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애굽과 시내 광야의 경계가 홍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내 광야로 나가기 전에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인데, 그 이유는 더 이상 애굽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홍해는 이를테면 돌아올 수 없는 강입니다. 이제 애굽으로 복귀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배수의 진을 친 겁니다. 오직 앞만 보고 가나안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지독한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야 40년 생활을 하며 한 번도 애굽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마 홍해를 건너지 않았다면 다 애굽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가나안 문턱에까지 가서 정탐꾼의 보고 후에도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작당하고 선동하고 밤새도록 난리를 쳤습니다. 애굽에서 먹던 고기가 그립다고 했고, 미나리, 부추, 마늘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애굽 타령을 했습니다. 우리도 출애굽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탈출해서 홍해를 건넌 사람들입니다. 홍해는 세례입니다. 바울은 홍해 도강을 세례에 비유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넜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노예로 살던 때를 홍해에서 수장했다, 죄를 다 씻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도 자꾸만 세상 낙에 대한 향수가 대단합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이게 항상 우리의 광야 생활에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저만치 가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결국 애굽을 포기하지 못했던 탈출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탈출 2세대나 3세대들입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갑시다. 뒤돌아보지 맙시다. 우리는 어차피 홍해를 건넜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십니다. 시내 광야는 낮 기온이 40에서 49도까지 가고, 밤에는 영하 10도까지도 간다고 합니다. 일교차가 40-50도 차이입니다. 최악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해가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따뜻하게 지키셨습니다. 무려 40년간 광야에서 살았지만 일사병으로 죽거나 얼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40년간 옷이 헤지지 않게 했다고 했고, 발도 부르트지 않도록 지켜주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농사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마르면 생수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살게 한 겁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그 방식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내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가장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셔서 그렇지 그야말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기에 우리가 건재한 겁니다. 조금도 과거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과 우리 삶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 원리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십시다. 확신하십시다. 이스라엘 백성 중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징계 받아 이래죽고 저래죽었지 헐벗거나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들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고 계십니다.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계절적으로도 힘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련히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절대 굶지 않습니다. 헐벗지 않습니다. 확신하고 감사하십시오. 더 열심히 주님 따르는 일에 정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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