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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7월 22일 예레미야 02<br>
본문: 렘 1:4-10</p>
<!-- paragraph:p0002 -->
<p>[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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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요시아 왕 13년 그러니까 주전 627년에 활동을 시작해서 여호아와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왕을 거쳐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 7년까지 그러니까 완전히 나라가 망하는 주전 586년까지 활동을 했습니다.</p>
<!-- paragraph:p0004 -->
<p>그를 우리는 눈물의 선지라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자기 조국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차라리 바벨론에 투항하고 포로로 잡혀가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진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나라가 망한다고 적국에 항복하라고 하는 예언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겠습니까? 그는 예언자 생활을 하던 40년 내내 반역자 소리를 듣고, 고립되어 신분의 위협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선지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너무도 안쓰럽고 딱한 선지자였습니다. 주전 587년에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최후도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예레미야서에는 기독교 신앙의 원초적 교리인 예지예정 사상이 나옵니다. 5절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의 소명 현장에서 하나님이 친히 예레미야에게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며칠 전에 선지자로 세우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 모태에 짓기 전에 알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하기는 이미 창세 전에 하셨으나 그제서야 그를 부른 겁니다. 시편 139편 13절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셨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은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예지예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택정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예지예정을 굳게 믿었기에 예언자 소명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사상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신앙을 끝까지 지켜갈 수 있습니다. 바울, 칼빈, 어거스틴이 강조한 것이 예지예정 사상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창세 때에 끝난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 뿐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사건은 그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겁니다. 그러므로 구원파의 물음은 잘못된 겁니다. 제가 사과나무 얘기를 자주하게 됩니다만, 그동안 나는 사과나무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 날 내 가지에 사과가 열려서 내가 사과나무인지를 확인하게 된 겁니다. 사과가 그 나무를 사과나무 되게 하는 게 아니라,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는 겁니다. 사과는 담보물일 뿐입니다. 믿음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만 열리는 사과 같은 게 믿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초적으로 사과나무였습니다. 그동안 사과가 안 열리다가 어느 날 열린 겁니다.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보증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주시며 직접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알고, 선지자로 세웠다’는 겁니다. 이제야 그 사실을 너에게 고지한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런데 예레미야는 ‘슬픕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즉 소명을 접수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때가 약 20세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적나라한 자기의 한계를 고백한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세 단계를 통해 소명을 관철하십니다. </p>
<!-- paragraph:p0007 -->
<p>첫째, 명령입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누구든 하나님이 부르시면 예레미야처럼 ‘나는 아이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앞에 있는 이사야를 보면 그는 ‘나는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습니다(사 6장). 모세도 마찬가지로 ‘저는 혀가 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아론을 붙이시고, 이사야는 숯불로 입술을 지진 후 명령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무조건 전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저는 어립니다.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부담되기 때문입니다. 회피하고 사양하고 유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p>
<!-- paragraph:p0008 -->
<p>둘째, 약속을 하십니다. 8절입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함께 해 줄 테니 안심하라는 겁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서명까지 하십니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반드시 함께 할 테니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40년간 예레미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입니다. </p>
<!-- paragraph:p0009 -->
<p>셋째, 표징을 주십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이 친히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십니다. 더 이상 예레미야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게 조치하십니다. </p>
<!-- paragraph:p0010 -->
<p>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소명을 주십니다. 우선 무조건 전하라는 명령,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 너와 함께 하며 네 말을 네 입에 둔다는 생생한 체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약속, 표징을 통해 우리도 이 시대의 진정한 선지자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br>
<!-- paragraph:p0011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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