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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성전 안의 앉은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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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그는 &lt;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gt;(행 3:2)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고마운 사람들이 날마다 그를 성전 어귀에까지 메어다 주어서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그 태생적인 불행은 그로부터 모든 걸 앗아갔습니다. 그라 한들 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는 몸부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불가항력적인 숙명에 지쳐서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을뿐더러 희망에 대한 부질없는 충동 따위는 우선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어떤 바람이 있다면 그저 굶지 않고 그날그날의 구복을 채우는 것입니다.</span><span> </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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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 paragraph:p0003 -->
<p class="p3">그러던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려던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 앞에 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요한은 쓰다 남은 동전 몇 닢만 뿌리고 가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적선은 않고 &lt;우리를 보라!&gt;고 합니다. 한두 푼을 건네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애인은 여전히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어서 &lt;무엇을 얻을까&gt;하여 그들을 봤다고 합니다. 그를 한 인격으로 대해 주는 사람을 마주 한 지가 너무 오래여서 이제는 아예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 조차도 잊고 살아가는 처지였기에 그의 관심은 오로지 몇 푼 적선에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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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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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인간의 그런 낡은 욕망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구원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lt;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gt;고 외친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그의 육신만을 온전케 하는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옥죄어 온 모진 운명의 사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고 지금껏 그를 지배해 온 암갈색의 우울함과 그의 발목을 잡고 있던 슬픔의 긴 그림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상심으로부터의 구원을 뜻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구원의 본질을 잘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금이나 은이 아니라 주님이 죽음이라는 숙명을 딛고 부활하신 것처럼 선천성 장애인이 자신의 그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굴레를 깨고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 것처럼 현재 자기를 얽매고 있는 온갖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참된 구원을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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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 paragraph:p0007 -->
<p class="p3">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이 장애인의 근본적인 비극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이 언제나 성전 문 앞에서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지만 그게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이란 단지 자기의 구걸행각에 필요한 목 좋은 무대일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그 &lt;성전 안&gt;으로 두 사도와 함께 나란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전 앞에서 멎었던 한 인생이 이제 새로운 지평으로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이란 언제나 이렇게 숙명처럼 굳어진 경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새로운 경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기껏 연민과 멸시의 대상일 뿐이었던 한 장애인이 이제는 사람들의 놀라움과 경탄의 중심에 서서 변화된 삶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운명의 족쇄에 묶인 채 오로지 성전 밖에서만 머물던 사람이 그것에서 풀려난 감격과 기쁨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몸은 비록 성전 안에 있다 해도 마음과 영혼은 여전히 성전 밖에서 무기력하게 방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lt;성전 안의 앉은뱅이&gt;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3"><br></p>
<!-- paragraph:p0009 -->
<p class="p3">따라서 오늘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기적은 낙심과 좌절뿐 아니라 헛된 탐욕의 사슬을 끊고 금과 은만을 정신없이 좇아가던 삶으로부터 용감하게 탈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끄시는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지언정 성전 앞에 주저앉은 채 자신의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장애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lt;의&gt;라는 푯대를 향해 부단히 걷고 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생명을 회복하는 통로이자 운명을 바꾸는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3"><br></p>
<!-- paragraph:p0011 -->
<p class="p3">오늘, 모두 일어나 걷고 뜁시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며...!</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