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과 실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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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제헌절이었습니다. 물론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제헌의회가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만 이참에 유수한 교회법에 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교회는 2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근대 실정법 전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구한 역사의 법적 시스템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한국 교회에 만연된 교회법 무시 풍조와 실정법 의존 현상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입니다. 이것은 결국 성도나 개 교회 혹은 교단들이 성경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회법보다는 강제판결을 의미하는 실정법을 더 선호하고 사회법을 더 신뢰한다는 얘긴데, 이는 곧 신앙의 잣대인 성경 말씀에 대한 경시 풍조를 뜻한다는 점에서 심히 걱정스럽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 관련 분쟁들은 교회법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성경도 분명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세금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지만 교회법과 사회법에 적용되어도 틀림이 없는 원칙입니다. 교회문제는 교회법으로, 사회문제는 실정법으로 푸는 게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 교회는 너나 할 것 없이 교회의 치리규정과 헌법은 무시한 채, 오로지 실정법에만 매달려 교회들의 크고 작은 분쟁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해 벌어진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분쟁,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분쟁, 우리 교단 부총회장 선거 분쟁, 한국찬송가공회 분쟁, 몇 년 전 한국 사회 전체를 시끄럽게 했던 광성교회 분쟁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세속 법정의 그런 강제판결이 교회를 하나로 회복시키고 교인들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를 도모하기는커녕 도리어 분열을 공고히 하고 교인과 교회 간의 갈등의 골만 더 깊게 할 뿐 이라는 데 있습니다. 열심히 민․형사 소송에 매달리지만 정작 판결에 승복하는 사람은 없다 보니 소송 당사자들 간의 대립과 갈등은 더 심각해져 결국은 분열로 가는 게 다반사인데 이 또한 한국 교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어떤 분쟁을 세속 법정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건을 비판하면서 <장차 성도가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며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한다는 말은 당시 헬레니즘 문화권의 재판 형식의 알레고리로서 훗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성도들이 그의 배심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란 비록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불의한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틀린 것이고 패배를 뜻한다며 교회 공동체의 강한 자율성을 주장합니다. 적어도 교회는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장차 이 세계를, 아니 천사까지도 심판할 사명을 가졌다(고전 6:3)는 성도들의 자의식이야말로 얼마나 웃기는 자기기만이냐는 것입니다.
부디 잡배들의 패싸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든 원색적인 분쟁을 그치고 성도 본연의 자존심과 동일성을 지키며 교회법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보다 성숙한 교회 공동체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