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5w: 예레미야 강해 01(렘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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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5일 예레미야 01
본문: 렘 1:1-7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 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비운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다가 망해갈 때 소명을 받고 완전히 나라가 망하기까지 선지자 직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늘 조국 유다에 대한 연민으로 안타까워했고, 백성들 앞에서 울면서 예언했습니다. 우리나라 사정도 많이 어렵습니다. 예레미야서를 공부하며 공감도 하시고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끼시고, 이 시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진단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왕은 므낫세 왕이었는데, 예레미야는 그 때 태어나서, 요시야 왕 13년에 선지자의 소명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이라고 합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 십일 년 말까지 선지자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유다는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때부터 계속 유다가 망한다는 예언만 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유다를 위협하는 바벨론에 투항해야 살 수 있다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불가사의합니다. 유다가 망한다는 것과 적국 바벨론에 투항해야 한다는 게 예언의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 때문에 유다가 필히 망하니까 저항하지 말고 바벨론에 순순히 백기를 들고 여호와의 징계를 용납하라는 겁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적국의 스파이라고 했고, 백성은 백성대로 그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는 눈물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조국을 향해 저주를 선언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힐기야가 아나돗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원래 제사장 직은 세습 직입니다. 제사장 직은 30세가 되면 자동 승계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직은 세습 직이 아닙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선지자 직을 수행합니다. 나이 기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순간이 곧 소명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제사장 집안이었음에도 예레미야가 선지자 소명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30세 이전에 소명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약 20세쯤 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나는 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예레미야가 난감해 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구절을 참고할 때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소명을 받은 것은 30세 이전인 듯합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는 그가 누구이고, 몇 세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강권적으로 임하면 선지자의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이를테면 하나님의 대변인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특정인을 택하셔서 당신이 하고픈 말씀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선지자가 됩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설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 의식에 무게 중심을 많이 두는 가톨릭의 신부들은 선지자 전통이라기보다는 제사장 전통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목사들은 예배 의식보다 말씀 선포에 더 비중을 둡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구체적으로 선포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감 없이 선포하는 게 주요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완벽한 설교 원고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원리는 같습니다. 말씀의 영이신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고, 전달하는 과정에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주시든, 성령이 감동을 주시든 그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시대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에게 강조되는 것은 선지자적 역할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이 시대의 설교자들은 담대하게, 청중들에게 아부하지 않고 선포해야 한다고 신학교에서 가르칩니다. 설교가의 유혹은 듣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겁니다. 구약의 선지자에겐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듣든 안 듣든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레미야는 그런 예언을 하기 싫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만 합니다. 오늘날의 설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요즘 설교의 면면을 보면 ‘복’ 얘기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청중들에게 아부해서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다 죽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내용을 예레미야는 충실히 증거 했기 때문에 늘 신변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요시야 왕 13년에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4-5절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요시야 13년에 선지자로 알아 본 게 아니고, 모태에 짓기 전에 그를 알았습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예지(豫知)입니다. 바울 사상의 정수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입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하나님이 그를 택하신 게 아니라, 엄마 뱃속에 짓기 전에 알았습니다. 바울은 ‘창세 전에’ 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알았다’는 말씀은 보통 심각한 말씀이 아닙니다. 완전히 마스터 했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 ‘내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는 예정(豫定)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를 그 때 세운 게 아니고, 태어나기도 전에 세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택하심>은 이미 출생 전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요 백성이요 선지자로 이미 택하셨습니다. 그러면 요시야 왕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순간은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안 믿다가 믿을 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 어느 시점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은 내가 택함을 받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때 구원을 깨달았을 뿐이지 그때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시제를 잘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택함은 이미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창세 전에 나를 다 아셨고, 그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백성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은 게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자가 깨닫는 구원의 결과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전제가 아닙니다. 구원의 결과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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