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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m: 영성의 계절(벧후 1:3-11) 교회학교 교사주일

2009년 7월 12일 주일낮예배/교회학교 교사주일
본문: 벧후 1:3-11
제목: 영성의 계절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름은 휴가의 계절입니다. 그런데 교회적으로는 영성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아동부의 여름성경학교라든가 중고등부, 청년부 혹은 전교인 수련회 같은 훈련 프로그램이 연중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름에 휴가보다 영성훈련에 더 힘써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4장 8절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체의 연단도 도움이 되지만 경건훈련은 우리에게 지대한 도움이 되어 금생과 내생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앙훈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군인도 늘 훈련을 받지만 특별히 유격훈련을 받기도 합니다. 왜냐면 전력 증대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훈련에 여러분이 더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여름이면 피서 갈 궁리만 하는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문화이고 우리는 영성훈련에도 시간을 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성훈련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덕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이라고 합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는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덕은 고상한 인격을 말합니다. 품위 있는 성품을 뜻합니다. 믿음에는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영성입니다. 우리의 한계는 믿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체로 말하면 뼈대를 뜻합니다. 그런데 뼈만 걸어 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에 살과 피부가 입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합니다. 뼈만 있으면 흉하니까 살과 피부를 입히라는 겁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는 영성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갈수록 천해지고 있습니다. 이게 참으로 큰일입니다. 이제 완전히 딴따라로 전락했습니다. 원래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닙니다. 원래 기독교는 참으로 품위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덕을 더하는 일에 무책임했습니다. 그런 나머지 기독교가 너무도 천박해 졌습니다. 목사가 느끼기에도 민망한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가 어떻게 비쳐지겠습니까? 하여간 너무 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영광은커녕 욕만 돌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많이 합니다. 물론 부당한 욕도 있지만 우리가 기독교를 너무 경박하게 만든 책임이 더 큽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할 때, 그 형상(Imago Dei)은 입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격의 종교요 품위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비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는 영성훈련을 통해 신앙에 덕을 쌓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좀 더 품위를 가지고 격조 높은 신앙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둘째는 지식입니다. 믿음에 지식을 더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은 신앙은 반지식적이기에 무조건 아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지성의 종교입니다. 모르면 못 믿습니다. 알아야 믿습니다. 또 아는 만큼 잘 믿을 수 있는 종교가 기독교 신앙입니다. 모르고 믿으면 기독교 신앙도 미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맹목이나 광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알고 제대로 믿으라는 겁니다. 미신은 그 대상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치성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목욕재계나 치성은 필요 없습니다만, 우리가 믿는 대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이 됩니다. 덮어놓고 믿는 것은 맹신이요 미신이요 광신일 뿐입니다. 알고 믿어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본질은 신뢰입니다. 상대를 모르고 어떻게 신뢰합니까? 결혼할 때 상대를 신뢰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결혼할 수 있습니까? 상대를 충분히 안 다음에 결혼을 결단하지 않습니까? 종교는 그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덮어 놓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안 됩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고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아는 데 너무도 태만하고 소홀합니다. 우리가 미신 섬기던 버릇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지신명이나 삼신할머니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빌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대상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수록 더 깊게 신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지혜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구약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 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호 6:3)고 했습니다. 여름에 수련회가 많은데 여건이 허락되는 한 기꺼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간을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든 알고 믿어야 합니다.

셋째는 절제입니다(6).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가장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절제는 신앙생활에 필수입니다. 주일이나 휴가 때 가족들과 여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는 신앙생활 안 됩니다. 절제하지 않고 어떻게 헌금할 수 있으며, 주일성수를 할 수 있습니까? 가장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절제입니다. 신앙생활은 절제와 자제와의 싸움입니다. 나를 얼마나 절제하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따를 것인가. 내가 얼마나 절제함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나를 구분되게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5절 이하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장거리 경주자와 같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라토너입니다. 42.195km를 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목이 마르며 피곤하고 또 포기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완주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우리는 아직 다 얻은 게 아니며 다 이룬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단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열심히 뛰어가는 도상의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확실하나 아직 구원을 다 이룬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야 그 구원이 완성됩니다. 이게 소위 ‘이미 지금과 아직 아님’(already not yet)의 긴장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셨으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미래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에 위치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뛰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절제라는 겁니다. 절제가 가장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내 본능, 내 기호, 내 정서대로 사는 게 아니고 주님의 주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많은 양보를 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자제해야 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아무런 구속 없이 살고 싶은데, 신앙생활하면 당장 주일성수를 해야 하고 헌금 생활해야 하고, 기도시간을 내야 하니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 이런 것들이 부담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완주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합니다. 경치 좋다고 마라톤 하던 사람들이 쉬면서 구경하면 되겠습니까? 심장이 터질 듯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의 영성을 위한 소중한 덕목들입니다. 덕, 지식,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 세 가지 덕목이 올 여름에 여러분의 영성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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