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30421m 일상성과 비상성(눅 10:38-42)

20130421m

눅 10:38-42

일상성과 비상성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8절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라고 합니다. 주님이 들어가신 마을은 베다니입니다. 계속 보면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와 그 다음 구절의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죽었다 다시 살아난 예수님 친구 나사로의 두 여동생입니다. 주님과 이 가정의 관계는 각별했습니다. 복음서를 종합해보면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이 집을 찾았고, 요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하고, 같은 장 31절을 보면 주님이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시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으면 저럴까 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그들 집을 찾으셨는데, 마르다와 마리아의 태도가 대조적입니다. 언니 마르다의 태도를 보면 매우 능동적입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다릅니다. 주님 발치에서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이고 사색적입니다. 마르다는 활동하는 형, 마리아는 생각하는 형입니다. 마르다는 봉사하고 헌신하는 스타일이고, 마리아는 조용히 앉아 말씀 듣고 기도하는 타입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스타일 중 어느 쪽이 마음에 드십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어느 쪽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은 마리아보다 활동적인 마르다를, 어떤 분은 마르다보다 차분하고 정서적인 마리아를 선호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떠십니까? 뜻 밖에도 마리아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셨습니다. 42절을 보면, 분명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마르다가 더 상식적이고, 마리아는 얌체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리아의 손을 드십니따. 내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면 일단 잘 대접해야 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언니 마르다의 불만도 바로 그것입니다. 왜 바쁜 일손을 안 거들고 말씀만 듣고 앉았냐는 겁니다. 이유가 있는 항의입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그럼에도 주님은 마리아편을 드십니다. 주님은 대체 마리아의 어떤 면을 그렇게 평가하셨을까요?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정서를 좋아하신 겁니까? 아니면 이 본문에 대한 상투적 해석처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보다는 조용히 앉아 말씀 듣는 게 더 낫기 때문입니까?


누가복음서에 의하면 주님의 이번 방문은 일상적인 게 아니라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들르신 겁니다. 주님 생애 마지막 방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의 만남은 일상이 아니라 비상한 만남, 최후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아무 생각 없이 이번 역시도 여느 때와 같은 줄 알고 대접하는 데만 골몰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번 방문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곁을 떠나지 않고 발치에 앉아 오직 말씀 듣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두 번 다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당연히 마리아도 언니를 도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대접보다는 한 말씀이라도 더 듣고 주님 곁에 있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겁니다. 따라서 그녀가 말씀 듣는 쪽을 택한 것은 성격이나 정서, 말씀에 대한 소신이었다기보다는 지금이야말로 비상한 시기라는 영적 분별력의 결과였습니다. 주님이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는 것은 마리아의 뛰어난 예지, 투명한 영성을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사실 때에 대한 마리아의 비상한 감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가복음 14장과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마리아가 주님 발에 순전한 나드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 발을 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제자들이 300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자를 돕지 왜 허비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나무라시며 가만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온 천하에 그녀의 이름이 기념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은 주님 코앞에 닥친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는데, 마리아는 벌써 주님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몰약이나 나드는 장례를 위한 향유입니다. 마리아의 깊은 속을 주님만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와는 달리 마르다에 대해서는 주님이 무엇이라 하십니까? 본문 42절 각주를 보면, 마르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르다는 일상성만 알았지 비상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다의 한계였고, 주님이 가장 아쉬워한 대목입니다. 사실 마리아도 평소에는 마르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일상성뿐 아니라 비상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상한 때는 비상한 결단으로 주님 뜻을 좇을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마르다는 일상적인 일에 분주했고, 마리아는 투명한 영성으로 때를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이때가 어느 때인지 분별할 줄 몰랐는데 마리아를 보십시오. 홀로 주님의 장례까지 준비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마르다가 될 수 있지만, 마르다는 죽었다 깨도 마리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영적인 잠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다의 한계입니다. 영성이 투명하지 못하고 흐리니까 제대로 된 영적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영적인 감수성이 예민해야 그때그때 바른 분별이 가능한데, 마르다는 인간적 열심에는 충실했으나 때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때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시대의 기상도를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그때그때 대처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제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56절에서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때를 잘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리아처럼 말씀을 들어야 할 때 봉사한답시고 날뛰고 혼자서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사실 분주한 마음이란 자기도취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르다의 그 분주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혹 자기 체면이나 자기 자존심이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게 진정으로 주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렇게 생색을 내고 불평을 터뜨렸을까요?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일까요? 내 영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무슨 권리로 말씀을 듣냐는 비난을 무릎쓰고라도 주님 발치에 조용히 앉아야 합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욱 그래야 합니다. 교회란 주님 대접을 위해 분주한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모이고, 교회 시설이 얼마나 좋고, 헌금이 얼마나 되냐를 따지는 데가 아니고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교회들이 주님을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벌이느라 모조리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깊은 맹목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주님 대접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가 아니라 영혼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깨어있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 말씀에 집중해야 할 비상한 때입니다.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를 기억하십시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는 주님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하기야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는 주님 말씀 때문에 지난 2000년간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봉사보다는 말씀 듣기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만, 이 말씀은 영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회도 공동체 삶을 이루는 곳인데, 다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앉았으면 꼴이 되겠습니까? 마르다일 때 마르다로, 마리아일 때 마리아로 되는 게 필요합니다. 때를 잘 분별하여 적절히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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