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新보릿고개

보릿고개란 요즘은 생경한 말이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이 땅의 배고픔의 대명사였습니다. 봄이 되면 지난 가을 수확한 곡식은 바닥이 나고 바랄 것은 오직 햇보리뿐인데 그러나 아직은 낟알이 여물지 않은 5-6월 춘궁기, 일 년 중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웠던 그 고비를 넘기기란 누구도 쉽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거나 <보릿고개에서 죽는다>는 말까지 생겨났겠습니까?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소나무 껍질(송기)을 벗기거나 언 땅에서 칡뿌리를 캤고, 논에 나는 자운영이나 쑥에 밀가루를 묻혀 찐 개떡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어느 시인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한 입 덜자고 아직 여물지도 않은 딸년 시집 보내놓고 울고 / 늙은 할미는 내가 빨리 죽어 /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한다며 밤낮 넋두리였다 / 하루 해는 왜 그리도 길었던가 / 포동포동 살 찐 허연 달을 보며 / 우물물로 배를 채워 보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렇듯 보릿고개는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 온 우리 민족의 눈물겨운 가난의 고개요, 잘 넘으면 또 한 해를 그럭저럭 살고, 못 넘으면 굶어 죽어야 했던 운명의 고개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쌀이 남아돌고, 보리밥은 웰빙과 다이어트 식단의 인기 메뉴가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최근 지구촌에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는 우리 사회에 때 아닌 보릿고개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지난 상반기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 보릿고개와도 같은 엄혹한 시기였습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졸지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와 세계가 꼭 그 꼴인데, 결국 현장에 계시던 주님이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며 처방을 내리시잖습니까. 물론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곧 주님이 시키는대로 했고, 다시 물을 떠다 손님들에게 갖다 줬을 때는 이미 물이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자칫 실패할 뻔한 잔치가 도리어 가장 성대하고 풍성한 축제로 끝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단이 있습니다. 잔뜩 손님을 청했는데 포도주가 떨어져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저질 포도주처럼 실망스럽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집니다. 잔치를 위한 포도주는 충분한가? 또 얼마나 질 좋은 포도주인가로 우리의 삶의 성패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포도주가 소진돼 이미 우리의 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주님이 지금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게 잘 납득이 안 되더라도 가나의 혼인집 하인들처럼 일단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사실 가장 이성적이라는 이 시대를 향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먼저 행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괜히 혼자 다 아는 체하며 자기 생각을 절대시하지 말고 속 깊은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 볼 일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돌 같은 심령에 채워진 그 말씀이 익어 마침내 양질의 포도주로 변화될 것이고, 우리의 가정은 2009년형 신보릿고개, 세계인들을 떨게 하는 이 글로벌 춘궁기를 가장 넉넉하게 이기는 가나의 혼인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