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8m: 뱀과 비둘기(마 10:16-22) 북한선교주일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09년 6월 28일 주일낮예배/북한선교주일
본문: 마 10:16-22
제목: 뱀과 비둘기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십니까? 예수님은 이상주의자입니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는 적대해야 하지 않습니까?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 오른뺨을 치려고 하면 왼뺨도 돌려 대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땅에 발을 딛고 하늘나라를 외친 분입니다. 그러니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입니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모습도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 그렇습니다. 제자를 택해서 훈련시킨 다음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내시는 대목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떤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아주 뜻 밖 입니다.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주님은 정말 세상을 가감 없이 꽤 뚫어 보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셨을 법한데, 우리에 비하면 세상을 평가절상 하셨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냉정합니다. 세상은 이리들이 득실대는 곳이란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평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주님이 이토록 세상을 혹독하게 보는 것은 의외입니다. 너희는 양 같은데 참으로 세상 속에 보내려니 걱정 된다는 겁니다. 주님은 무섭도록 현실을 꽤 뚫어 보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이십니다. 이상을 설교하셨지만, 칼처럼 현실을 진단하셨습니다.
이제 세상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몇 가지 교훈하십니다. 우선 또 다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겁니다. 저는 뱀과 비둘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줄 알았는데, 뱀과 비둘기는 환상의 조합이요 찰떡 궁합입니다. 진지하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동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가장 바람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겁니다.
뱀은 가장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을 미혹해서 파멸에 빠트렸기 때문입니다. 뱀은 마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지혜를 강조하기 위해 뱀을 끌어 오십니다.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겁니다. 고도로 지혜로우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감히 기만해서 범죄에 빠트린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겁니다. 이리는 잔인하고 교활합니다. 그 이리들이 득실대는 세상을 살면서 미련하면 당합니다. 자기를 지킬 수 없습니다. 지혜롭되 뱀처럼 고도로 지혜로우라는 겁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제일 먼저 당부하신 게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겁니다.
그런데 뱀은 비둘기의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비둘기는 순수함, 평화,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비둘기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혜에 순수함이 없으면 참으로 교활해 집니다. 그 지혜는 흉기가 됩니다. 남의 등에 칼을 꽂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지혜는 반드시 순수하고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롭기만 하면 안 되고 순수함이 있어야 그 지혜가 선용(善用)됩니다. 그래서 뜻 밖에도 뱀과 비둘기는 환상의 조합입니다. 비둘기만도 안 되고, 뱀만도 안 됩니다. 지혜만으로 살면 안 됩니다. 순수함이 필요합니다. 순결함은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뱀처럼 지혜로우십시오. 비둘기처럼 순결하십시오. 그래야 이리가 득실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건전하게 지켜가면서 그리스도인의 동일성을 잃지 않습니다.
오늘은 북한선교주일입니다. 지난 주중에 6.25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생각하고 민족의 화해문제를 함께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여러분,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 뱀과 비둘기 입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입니다만, 북한의 호전성과 전략은 거의 이리의 수준입니다. 세상에 미국을 상대로 저렇게 줄다리기 하는 상대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하고 북한하고만 맞붙으면 우리는 판판이 깨집니다. 여러분, 북한을 상대하는 문제, 통일 문제, 민족의 화해문제에 접근할 때 필요한 것은 지혜와 순수함입니다. 실리만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동족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타산을 뛰어넘는 순수함도 필요한 겁니다. 채찍과 당근이 필요합니다. 평화적인 통일이 되어야 하니 비둘기도 필요하고, 자칫하면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 수 있으니 뱀도 필요합니다. 지혜와 평화를 같이 구사해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민족이다, 같은 피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덤비면 큰코 다칩니다. 냉철한 현실분석이 필요합니다.
이제 주님은 사람을 삼가라고 하십니다(17). 사람을 주의하고 경계하라는 겁니다. 기절초풍할 말씀입니다. 사람을 사랑해라, 용서해라, 포용해라고 해야 주님다운데,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사람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래도 주님이 맹목적인 이상주의자입니까? 우리보다 더욱 현실주의자이십니다. 여러분,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천적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영도해서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누구에게 고통을 겪었습니까? 사막의 전갈에게요? 아닙니다. 동족에게, 형제들에게,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울도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다 사람에게 입니다. 예수님도 동족에게 배신당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제자에게 은 30에 팔리셨습니다. 사람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과대평가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우리의 사랑과 용서의 대상이란 점은 맞습니다. 그러나 경계의 대상도 맞습니다. 사람을 절대 맹목적으로 신뢰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사람을 믿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피 흘리는 이유는 사람에게 당해서입니다. 남북문제, 민족의 화해문제를 감상적으로 덤비거나 낙관하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그러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9). 성경은 염려를 경계합니다. 염려는 믿는 자들의 금기입니다. 주님은 유난히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왜냐면 염려는 근본적으로 불신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염려합니까? 하여간 믿는 자들이 염려한다는 것은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아니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양친이 다 계신데 어린 아이가 날마다 먹을 것 마실 것을 걱정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온전한 아이이겠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몫이 아니라 아버지의 몫입니다. 걱정을 해도 아버지가 하십니다. 주님이 날아가는 새를 보라고 하신 이유는 새가 농사짓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심을 보라는 겁니다. 들의 백합화가 길쌈 안 해도 다 저렇게 입히심을 보라는 겁니다. 날아가는 새보다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한 존재인 너희를 어찌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냐는 겁니다. 새나 백합화에게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입니다. 미물도 입히고 먹이는데 하물며 자녀인 너희를 굶기시겠냐는 겁니다. 그러니 새를 보고 백합화를 보고 깨달으라는 겁니다. 아무리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이라 해도 염려하지 말고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내 삶을 내가 감당하려 하니 고뇌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힘든 일이 발생하면 기도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기도해서 구하십시오. 그러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도 안 되면 들에 나가 풀을 보십시오. 염려하지 않고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보십시오. 염려 안 해도 잘 날아다닙니다. 남북문제도 그렇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역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우리에게 통일을 주십니다.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칩니다. 지혜롭고 순결하게 그리고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의 숙원인 통일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바람과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통일민족, 통일국가를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민족과 분단된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말씀 앞에서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