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4m: 스데반(행 6:8-15, 7:54-60) 순교자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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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4일 주일낮예배/순교자기념주일
본문: 행 6:8-15, 7:54-60
제목: 스데반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 교회에도 팬클럽이 몇 개 됩니다. 이망래 권사님은 열렬한 노사모입니다. 이은자 집사님은 강사모 회장 입니다. 강사모는 강병중 집사님을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저는 스사모 회장입니다. 스데반을 사랑하는 모임인데, 회원은 없고 회장 밖에 없습니다. 저는 후일 천국에 가면 스데반을 만나고 싶습니다. 바울이나 다른 사람들은 팬클럽 회원이 많은데, 저는 스데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는 스데반의 광팬입니다.
스데반은 2000년 기독교사의 제1호 순교자입니다. 흔히 야고보 사도를 첫 순교자로 봅니다만, 스데반은 사도행전 6장에,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에 나옵니다. 스데반이 제1호고 야고보가 제2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은 것은 스데반에게 다 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뽑는데 스데반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스데반은 수석집사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8절을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고, 15절을 보니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대단한 설교가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산헤드린에서 행한 명설교가 나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고발한 사람들과 산헤드린 의원들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 내용과 기승전결의 짜임새가 출중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나오는데, 스데반의 설교가 가장 멋집니다. 초대교회는 집사부터 달랐습니다. 요즘 목사들은 초대교회 집사만도 못합니다. 베드로가 한창 선풍을 일으키며 하루에 3천 명씩 회개시킬 때 스데반은 산헤드린에 잡혀가서 그토록 뛰어난 명 설교를 하고도 한 사람도 회심시키지 못했습니다. 다만 2000년 교회사의 첫 순교자가 된 겁니다. 주님은 첫 순교자를 열두 사도 중에서 뽑지 않으시고 일곱 집사 중에서 뽑았습니다. 열두 사도 중에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아니라 최초의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주님이 스데반을 첫 순교자로 택하셨다는 것은 성령충만이나 지혜나 믿음이나 은혜나 권능으로 볼 때 당시 스데반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아무나 순교하는 게 아닙니다. 그의 마지막 순교 장면을 보십시오. 7장 55절 이하를 보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이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주님이 스데반의 죽음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벌떡 일어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59절 이하를 보면 스데반은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최후의 기도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이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회심합니다. 바울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이름을 바꿨습니다. 원래는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이었는데, 보잘 것 없는 자라는 뜻인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바울은 이후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죄인 중 괴수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바울은 정말 한 생을 겸손히 살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스데반을 죽인 전력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바울은 평생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아픔을 지고 살았습니다. 7장 57절을 보면, 스데반을 돌로 치는 증인들의 옷을 사울이 보관합니다. 사울이 스데반 처형의 주범이었습니다. 바울이 유대교 전사시절 그가 스데반을 체포했고,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그렇게 은혜와 능력에 충만했던 사람도 돌 맞으면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대단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왜 그를 죽게 하셨을까를 생각합니다. 최소한 돌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것만큼은 막아주셔야 옳지 않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는 것이 결코 지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최후요 승리입니다. 그래서 고스란히 스데반으로 하여금 당하게 하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당하는 온갖 고난은 우리에게 필요 약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게 두는 것은 그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기에 막지 않으시는 겁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왜 나를 이렇게 버립니까 하며 비명을 지를 때에도 막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의 순교는 결코 개죽음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죽음으로 비로소 사도 바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사도행전과 초대교회를 빛내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2000년 교회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최후를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승계한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사도도 목사도 아닌 집사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허무하게 죽게 하실 바에는 하나님이 스데반에게 그런 능력들을 왜 주셨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교자에게 그런 능력이 필요합니다. 은혜와 능력은 자기 잘 먹고 잘 살게 하려고, 자기 영광을 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순교하라고 주신 겁니다. 순교적인 삶을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권능, 축복을 나를 위해 쓰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 역사도 125주년이 되었습니다. 가톨릭은 우리보다 100년 앞섭니다. 그래서 신구교의 순교자 수를 계산하면 무려 3만 명입니다. 그 중 개신교는 약 3천 명입니다. 6.25 때 광주 양림교회에서 목회하던 박석현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인민군이 광주를 점령하자 주일인데도 교인이 겁이 나서 교회를 안 나옵니다. 그래서 박 목사님 가족만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인민군이 들이닥쳤습니다. 목사님 가족을 마당으로 몰아놓고 인민군 한 사람이 교회당에 걸려 있던 예수님 성화를 갖고 와서 침 뱉고 밟았습니다. 박 목사님 가족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칠순이셨던 목사님의 장모가 인민군이 침 뱉고 밟은 액자를 자기 무명 치마로 닦자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다시 인민군이 침 뱉고 밟고서는 목사님 사모님께 밟으라고 하자 다시 닦습니다. 목사님 외동아들도 죽이고, 목사님을 죽창으로 찔렀습니다. 가족들이 줄줄이 죽는 동안 목사님은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며 한 손에는 성화를,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죽창에 7번 찔려 죽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냥 된 게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인간적으로는 비참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선택되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대가로 평생 죽을 고생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도 목 베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가장 훌륭한 설교를 남겼을 때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얼마나 복 받은 인생입니까? 여러분의 생애도 스데반처럼 천사처럼 얼굴이 빛나고 마지막 순간에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이 서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는 복된 순교적인 최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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