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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자들(사 10:1-4)

압제자들

사 10:1-4


요즘 새 정부의 인사청문회와 함께 새삼 주목받는 말이 바로 <전관예우>입니다. 전관예우란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여 수임한 사건에 대해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판결하는 법조계의 오랜 관행과 특혜를 이르는 말인데 이게 바로 우리나라 법조비리의 온상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시대 유다사회도 이런 법조계의 비리와 죄악이 만연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법령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1절).

불의한 법령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오직 지배자, 권력자의 사욕과 이익만을 위해 제정된 법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백성들의 권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악법만을 만들어 가난한 자들을 합법적으로 수탈하고 백성들을 억압하고 고아와 과부들을 착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나 법이란 약자들을 위한 제도이고, 사회 정의를 위한 장치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고, 또 각 민족과 나라의 헌법 제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법이 가진 자들, 권력자들의 기득권 수호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사회 정의를 유린하고 부정으로 축재하게 하는 도구가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포로>와 <죽음>을 말씀하시며 심판을 경고하고 계신대 심지어는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4절)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훗날 더 엄정하고 더 무서운 하나님의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만한 권력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3절).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 백성들의 권리를 유린하고 가난한 자들의 보잘 것 없는 소유마저 약탈하는 불의한 권력가, 오만한 지배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벌하시는 날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환난 때에 어떻게 하고, 어디로 도망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겠느냐>는 것은 그 어디에도, 그 누구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너희의 영화를 어디에 두려느냐>는 것은 지금까지 합법의 이름으로 남을 착취하고 수탈한 모든 부와 영광을 결코 제대로 누리거나 어디 감출 수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십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든, 또 어떤 영화와 권력과 부를 누리며 살든 반드시 여호와께서 죄악과 부패와 모순을 벌하시고 징계하신다는 이 환난의 날, 최후 심판의 날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법과 또 그 위에 군림하여 제멋대로 법을 농단하는 권력가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았습니다. <너희가 그 날에 어떻게 하려느냐?>는 하나님의 이 준엄하신 물음 앞에서 특히 법조인들과 권력가들은 부단히 자신을 성찰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