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607n: 삼위일체(빌 2:6-8)

2009년 6월 7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빌 2:6-8
제목: 삼위일체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오늘은 환경주일이자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희한한 나라는 드뭅니다. 구교와 신교의 하나님 칭호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느님과 하나님이 다릅니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그 뜻은 완전히 다릅니다. 헬라말로는 하나님의 이름이 ‘테오스’ 이고, 히브리말로는 ‘엘로힘’ 또는 ‘야훼’ 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이 하느님이라고 하고 개신교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테오스를 하느님이라고 번역한 가톨릭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했을까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천신(天神)을 으뜸가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천신을 상제(上帝)라고 했습니다. 천지신명(天地神明) 할 때 바로 그 이름입니다. 무속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님을 가톨릭은 그대로 채용했습니다. 하느님은 그래서 천신이란 말입니다. 이후 100년 뒤에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개신교가 들어오기 100년 전부터 테오스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개신교는 처음에는 구교의 하나님 칭호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숫자 하나할 때 바로 그 하나님 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한 분이고 유일신이기 때문입니다. 문법적으로는 어색합니다. 숫자는 인격체가 아니기에 님 자를 붙일 수 없으나 억지스럽게 그렇게 붙인 겁니다. 숫자 하나가 졸지에 인격체가 된 겁니다. 이것을 문법적으로 타당 하냐, 신앙적으로 옳으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한 분이냐는 겁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이니까 하나님이 한 분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봅시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서 ‘내가’는 예수님 곧 성자입니다.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입니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투스 곧 옆에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두고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이미 보혜사입니다. 어쨌든 성자, 성부, 성령 세 분입니다.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도 성부, 성자, 성령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상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아주 이른 시기부터 나왔는데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단일신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 분입니까? 이것은 교리적으로 삼신론입니다. 이것도 이단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단일신론도 아니고 삼신론도 아닌 삼위일체 신이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규정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로힘, 신약성경의 테오스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명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 생각해서 단일신으로, 세 분으로 생각해서 삼신이라고 하면 틀린 겁니다. 삼위일체 신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삼위일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존재방식인데 대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우리는 개념 속에 가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갇히는 분이 아니라 초월신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려면 개념화할 수밖에 없는데 최선의 개념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어떤 분은 원래 한 분이신데 시대에 따라 그러니까 구속사를 통해 시대마다 변신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 때는 성부 하나님, 인간 구속이 필요할 때는 성자 하나님으로, 교회 시대 때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게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맞습니까? 그럴 듯하지만 틀린 말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같은 시간과 장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출현했습니다. 성부의 음성이 들리고, 성자가 세례를 받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성자에게 임합니다. 그러니 한 분이 시대를 달리해서 변신했다는 논리, 소위 양태론은 호소력은 있으나 맞지 않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분은 삼위일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거스틴은 자연에서 비유를 많이 가져 왔는데, 강으로 설명해서 상류, 중류, 하류로 혹은 나무로 설명해서 뿌리, 줄기, 가지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어거스틴 삼위일체론의 한계는 상류, 중류, 하류가 독자적으로 완전한 강이 될 수는 없는 데 있습니다. 뿌리만으로 완전한 나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뿌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가 다 있어야 완전한 나무입니다. 그러니 각 부분은 1/3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부, 성자, 성령은 독자적이며 각자로도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성자가 1/3 하나님, 성령이 1/3, 성부가 1/3 하나님이 아닙니다.

머릿수로는 셋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하나입니다. ‘부부는 일체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부부는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인데 본질적으로는 한 몸입니다. 이런 이해의 보다 완전한 형태가 삼위일체입니다. 각자가 독립적인데 존재적으로는 하나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각각 독립적이나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와 비슷합니다. 본문에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존재적으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머리는 셋인데 본질적으로는 하나라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존재방식으로 계시고, 그분에 대한 칭호는 무엇인지를 알고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색적인 종교 신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도 좋겠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칭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신앙이 자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이해한 신을 놓고 자기 신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개념이 어렵지만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말씀은 그 위상이 똑 같습니다. 수평적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위계질서 속에 있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부르다 보니 암암리에 위계질서가 생겼습니다. 성부가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성자, 그 아래에 성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부리는 종쯤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삼위는 수평적으로 각 세 분 하나님의 권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습니다. 하여간 그 위상이 똑 같고, 본질도 똑 같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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