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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paragraph:p000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2009년 5월 31일 주일찬양예배<br>
본문: 삼상 16:13-16<br>
제목: 성령충만</p>
<!-- paragraph:p0003 -->
<p>[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p>
<!-- paragraph:p0004 -->
<p><br>
13절 하반절을 보면,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성령에 충만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1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 말씀은 또 무슨 뜻입니까? 사울에게 계시던 성령이 이제는 완전히 그를 떠나셨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성령을 소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사울이고 제2대 왕이 다윗인데 너무 대조적입니다. 이 날 이후 두 사람의 생애는 완전히 갈립니다. 성령 충만했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해 성군이 되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소멸했던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혀 번뇌하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 출정해서 세 아들이 전사를 하고, 본인도 중상을 당하자 칼로 자살합니다. 성령충만이 얼마나 복되고, 성령 소멸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그 순간부터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성령 내주와는 좀 다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상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한 1/3정도 찼다가 그 이후로 반까지 찼다가 나중에 가득 차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충만을 양적 개념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도 남보다 더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물량적으로 계산한 게 아니라 내가 그 성령께 얼마나 복종하는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내 결단의 정도를 나타내는 겁니다. 내가 성령을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이 나를 전적으로 소유하고 당신의 뜻대로 부리시는 상태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에 대한 나의 순종지수가 바로 나의 성령충만 지수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성령의 감동과는 상관없이 살아갑니까? 그만큼 우리가 아직도 성령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냥 성령내주의 차원이지 내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항상 성령 충만하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내주의 차원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 전적인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수 성도들이 성령내주 차원에서 살지 성령 충만하지 못 합니다. 성령의 계시에 예민하게 응답하고 교감해야 합니다.</p>
<!-- paragraph:p0007 -->
<p>그렇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헬라말로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은 곁에서 돕는 자, 변호자, 중보자, 중개자, 위로자, 권고자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곁에서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이 계셔야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존재가 절대적이고, 성령충만이 필수입니다.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며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이 바로 꼼짝하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성령 못 받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증인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p>
<!-- paragraph:p0008 -->
<p>그렇다면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돕습니까? 우선 우리의 믿음을 돕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처음에는 얼마나 갈팡질팡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 이후 그들이 얼마나 담대했습니까?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세상 분위기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다락방에서 오순절 날 강력한 성령을 체험한 그들은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담대히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고, 순교했습니다. 성령충 만하셔서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잘 지키십시오. 우리 재주로는 안 됩니다.</p>
<!-- paragraph:p0009 -->
<p>다음으로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돕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경은 우리더러 빌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못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탄식하며 우리대신 기도하십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이게 내게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다 정욕에 쓰려고 구합니다. 그러면 내게 해가 되는 건데도 그렇게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제대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령이 보기에는 한심한 겁니다. 그래서 탄식하며 중보 기도하신다는 겁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십니다. 하나님 자신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 뜻에 적중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해보았자 모르니까 엉뚱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리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덕에 우리가 이렇게라도 사는 겁니다. 부디 성령충만해서 늘 중언부언하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p>
<!-- paragraph:p0010 -->
<p>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삶을 돕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도우셔서 우리가 저질러 놓은 온갖 일들을 결국 선이 되도록 조합하십니다. 우리가 못난 짓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해도 성령께서 그 모든 것을 선이 되도록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이하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고린도후서는 말하기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인간 고백입니다. 얼마나 거꾸러뜨림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조차도 질그릇이지만 그 안에 계신 성령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면 누구도 우리를 감히 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필히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만 반대로 갑니다. 성령충만의 반대가 성령소멸, 성령훼방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고, 마가복음 3장 28-29절은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또 에베소서 4장 30절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말로는 성령충만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성령을 근심시키며 삽니다. 얼마나 놀라운 얘기인지 모릅니다. 사울이 바로 그래서 망했습니다. 입만 살아서 하나님의 신을 뇌까렸지, 실제로는 성령을 항상 훼방하고 근심시켰습니다. 견디다 못해 결국 성령이 그를 떠난 겁니다. 그리고 그를 악령이 지배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8절은 다른 죄는 다 사하심을 얻어도 성령훼방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 나를 회개케 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데, 그 성령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더 이상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자각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망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내가 회개하는 것 이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이 나를 떠나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디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묵살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에 응답하십시오. 성령의 인격성을 내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하십시오. 그래서 늘 성령충만한 성도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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