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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5월 31일 주일낮예배/성령강림주일<br>
본문: 눅 22:36-38<br>
제목: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p>
<!-- paragraph:p0002 -->
<p>[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난 후, 감람산 곧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중요한 자리, 대단히 심각한 시점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제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신 겁니다. 주님은 평화주의자이신데 어째서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하셨을까요? 더구나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낮에는 겉옷이지만 밤에는 이불입니다. 우리도 옛날 피난 시절에는 반드시 이불은 챙겨 갔습니다. 거지들도 이불은 이고 다닙니다. 더구나 팔레스틴은 일교차가 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중요합니다. 개인 재산목록 1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겉옷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토록 소중한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돈이 궁하면 귀중품을 전당잡히고 돈을 융통합니다. 유대인에게도 전당포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흔히 맡기는 재산이 겉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업자가 겉옷을 전당 잡았을 때는 해가 지면 반드시 본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다시 담보를 잡았습니다. 왜냐면 겉옷이 밤에는 이불이기에 안 돌려주었다가는 얼어 죽을 수도 있기에 아예 율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삶에 소중했던 게 겉옷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신 자리에서 이제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하신 겁니다.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 아시지요? 주님을 따라가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라고 했으나 주님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니까 바디매오가 겉옷을 버리고 홀몸으로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해줄까? 하시자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포기했더니 주님이 감동받으신 겁니다. 이만큼 소중한 게 개인의 겉옷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불인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이 말씀을 하시고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다가 체포되십니다. 그때의 장면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 18:10-11). 마태복음 26장에서는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52)고 합니다. 아니 산 아래에서는 칼을 사라고 하시더니, 산 위에서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십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표리부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p>
<!-- paragraph:p0005 -->
<p>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은 칼을 버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되 칼을 칼집에서 뽑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칼이 칼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칼을 휘두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정의와 위엄과 권위와 질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일단 칼집에서 칼이 뽑히면 흉기입니다. 그리고 칼은 칼집에서 한 번 뽑으면 절대 제 힘으로는 칼집에 다시 꽂을 수 없습니다. 이게 칼의 비극이요 악순환입니다. 칼을 뽑아 피를 보았으니 어떻게 칼을 칼집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 피의 보복이 무서워 계속 빼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칼을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쳐서 떨어트린 말고의 귀를 붙여주십니다. 칼을 쓰기 전의 상태로 회복시키신 겁니다.</p>
<!-- paragraph:p0006 -->
<p>최근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습니다.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공조해서 어떤 제재를 가해도 통제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통제 불능의 상황까지 온 겁니다. 아무리 미워도 못 마땅해도 핵을 가진 나라는 누구도 함부로 못합니다. 북한이 온갖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핵개발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이제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드신 주님이 비장하게 말씀하신 당부를 이쯤에서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속히 겉옷을 팔아 칼을 사야 합니다. 칼을 휘두르며 원수의 귀를 떨어트리자는 게 아닙니다. 칼은 가지되 어쨋든 피를 묻히지는 않아야 합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칼을 가지고도 끝까지 칼을 뽑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칼을 사서 칼을 뽑지는 않아야 합니다. 정말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겉옷을 팔아 칼을 사는 결단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우방도 좋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을 언제까지 남의 손에, 남의 처분에 맡기고 살아야 합니까? 지금 우리 형국은 어떻게든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미국이 핵우산으로 막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 사는 일에 우리가 뜻을 모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불감증에 걸려있습니다만, 안보 불감증이 심각합니다. 이 손바닥만한 나라에도 북에서 핵실험을 했는데도 우리는 끄덕도 안 합니다. 보훈의 달인 6월이 내일부터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운명에 처해 있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하시고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결단을 하도록 함께 뜻을 모으고 기도하십시다.<!-- paragraph:p0007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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