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30331n 안식 후 첫날 저녁(요 20:19-23)

20130331n

요 20:19-23

안식 후 첫날 저녁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9절 상반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이 사건은 부활하신 날 저녁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주님의 최후가 너무도 처참했고 충격적이었고, 아직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살벌했기에 그들은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부활절 당일 저녁에 놀랍게도 그들이 숨어 있던 다락방에 홀연히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문은 잠겨 있는데 주님이 나타나셨으니 말입니다. 20절을 보면 주님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대목을 좀 더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누가복음 24장 37-39절입니다.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문이 닫힌 다락방에 주님이 나타나셨기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 생각지 못하고 주님의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내보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인 줄 확인하고 제자들은 안도하며 기뻐했습니다. 


이후 주님이 제자들을 격려하신 말씀입니다. 이 본문은 2000년 전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인 동시에 2013년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평강을 빌어주셨습니다. 19절 하반절을 보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절에도 평강을 빌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나 음식이 아니라 평강입니다. 극도로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숨어 지내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빌어 주시자, 20절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마음에 평강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평강입니다. 방문을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무엇보다 먼저 평강을 빌어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부디 부활절 오후 주님이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평강을 회복하여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평안입니다. 당시 제자들의 상황과는 다릅니다만 본질에 있어서 우리는 평강이 절실합니다. 주님이 두 차례나 우리의 평강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마음에 평강을 찾으십시오. 두려움을 이기시고 불안을 극복하시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제자들처럼 다 기쁨을 얻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21절을 보니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처럼 나 또한 너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12제자들만 사도가 아닙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우리도 분명 주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한 것처럼 주님이 오늘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도입니다. 미션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게 우리의 미션입니다. 상황은 하나도 안 바뀌었으나 그럼에도 이 날 오후 주님을 뵌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세상으로 나가 두려움 없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 빼면 시체입니다. 부활이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자 기독교 복음의 정수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은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소망이 부활에 걸려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부활에 걸려 있습니다.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것은 주님이 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름 받은 자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포스톨로스(사도)입니다. 절대 우리는 은둔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그것을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산상에 초막 셋 짓는 걸 원치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날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세상으로 나가 불덩어리처럼 살았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옳습니다. 


주님은 숨을 힘껏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받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에 나가 담대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힘, 의지로는 안 됩니다. 성령에 단단히 붙잡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연적 삶이 아닙니다. 이때는 아직 오순절 전입니다. 만일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주님은 ‘성령 받으라’기 보다는 ‘성령충만하라’고 하셨을 겁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성령이 내 삶의 전적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나로 하여금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게 해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업도 운이 좋아야 되는 게 아니라 성령충만해야 하고, 취업도, 건강도, 학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정답입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무엇을 하든 그 삶과 과제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외마디로 하신 말씀, “성령받으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다. 오늘날 말씀으로는 “성령충만하라”입니다. 모든 게 성령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정체성, 미션이 다 성령충만에 의해 결정됩니다. 


부활하신 당일 저녁에 제자들이 숨어 있던 곳에 홀연히 나타나 위로와 격려하신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며 결단하며 살아서 이 시대에 가장 훌륭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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