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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331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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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눅 24:1-12</p>
<!-- paragraph:p0003 -->
<p class="p1">안식 후 첫날 새벽</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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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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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의 새 생명, 산 소망이 여러분께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p>
<!-- paragraph:p0008 -->
<p class="p1">본문 1절 상반절을 보면, 주님이 부활하신 시점이 안식 후 첫날 새벽입니다.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주님이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단순 일요일이 아니라 주일, 주님의 날,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유대교는 안식일을 성일(聖日)로 지킵니다. 안식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간판을 걸고 있는 곳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은 창조와 관련된 성일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 후 이레째 쉬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일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성일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안식일은 창조와 관련되고 주일은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룩하신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성일입니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라 복음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안식일보다 주일이 더 소중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시대부터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이행된 겁니다. 따라서 지금도 안식일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율법적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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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주님의 부활이 안식 후 첫날 이루어졌다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지 며칠 만에 일어난 일입니까? 금요일 날 운명하시고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으니 사흘만입니다. 문제의 사흘 동안 주님의 시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영혼은요? 지난 3일간의 영혼의 행방은 어떻게 됩니까? 주님은 모든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lt;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gt; 하면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어디론가 가셨는데 어디 가셨습니까? 육신과 함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갇혀 있었습니까? </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히브리서 5장 7절은 주님이 이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왜 주님이 이토록 힘들어하셨고, 무서워하셨을까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 고통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죄인이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지옥으로 갑니다. 주님은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유사 이래 유일무이한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죄인은 죽으면 가차 없이 지옥으로 갑니다. 의인은 죽으면 천국으로 갑니다. 주님은 영혼이 지옥으로 가는 게 두려웠던 것입니다. 주님이 지옥으로 가셨기에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차마 주님이 지옥 가셨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불경스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다 헛것입니다. 주님이 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지옥 갔다고 믿는 사람만 훗날 천국 갑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19절을 보면 주님이 옥에 가셨다고 합니다. 옥에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고 합니다. &lt;옥&gt;은 원어로 &lt;감옥&gt;이란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해석상 많은 논란을 가져왔고 지금도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감옥이 천국을 뜻하거나 연옥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옥은 지옥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썼는데, 베드로 사도 또한 주님이 사흘 간 지옥 갔다는 것을 믿고 고백했고 전했습니다. 사도신경도 마찬가집니다. 사도신경은 2세기부터 이미 교회가 고백해온 신앙고백문입니다. 이게 750년에 공식적으로 교회가 공인을 했습니다. 왜냐면 전승되어온 신앙고백문이 다양했기에 자칫하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후 750년에 가장 건전하고 반듯한 신앙고백문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 공인된 신앙고백문의 원문을 &lt;포르마 레쳅타(Forma Recepta&gt;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원문에 있는 한 구절이 빠져있습니다.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가 공인된 원문에는 있는데, 우리는 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입니다. 이게 우리나라 교회가 빼고 고백하는 이유는 교리적, 신학적 이유보다는 심정적 거부감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기독교 구속론의 백미인데 우리는 빼고 번역하였습니다. 주님이 지옥가시지 않았다면, 반드시 훗날 우리가 가야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대신 지옥에 가셨기에 우리는 오직 천국 갈 일만 남았습니다. 이게 대속이고 속량이며, 기독교가 말하는 진정한 구원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그가 지옥에 가심으로 우리는 천국 가게 되었다는 게 기독교의 영원한 메시지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저승에 가시어”라고 했습니다. 지옥이란 말 대신 저승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개신교회보다는 낫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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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주님이 사흘간 지옥에 가 계셨습니다. 우리 죗값을 위해 가셨다면 왜 사흘입니까? 본문 7절에도 보면,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왜 이틀이나 나흘은 안 되고 삼일입니까? 주님은 사흘간의 지옥살이로써 우리의 모든 죗값을 갚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흘이란 것도 필연입니다. 이틀은 부족하고 나흘은 불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지옥가면 종신형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 죗값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홀로 지고 가셨지만 사흘로 족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값 때문입니다. 주님의 피는 보혈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독자입니다. 하나님께는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분이 주님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사흘 계시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만큼 주님은 값진 분입니다. 전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는 데 필요한 기간이 사흘이면 되었습니다. </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 지옥행,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통해 그분이 나의 죄 문제, 지옥형벌을 완벽하게 해결하셨음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운명에는 지옥이란 것은 없습니다. 더는 심판이나 저주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주님의 부활을 통해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내 구원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며 담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마십시다. 그래서 늘 감사하시고 주님의 성호를 찬양하십시다. 주님을 최대한 영화롭게 하며 사시길 기원합니다.</p>
<!-- paragraph:p0017 -->
<p class="p1"><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br></p>
<!-- paragraph:p001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bMV829Gmw64"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