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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사 9:1-7)

그 이름

사 9:1-7


히브리어 문법에는 결과 동사라는 게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적 사건에 대해 과거적 시제를 적용하는 겁니다. 오늘 이 본문은 이사야 시대로부터 7백년 후에 성취된 주님의 성탄을 예언한 말씀임에도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6절)는 과거 완료형의 문장으로 돼있습니다. 전형적인 결과 동사입니다. 이것은 비록 장래에 있을 예언적 사건이지만 이미 발생한 것이나 진배 없다고 확신할 때 구사하는 선지자 특유의 어법입니다.


기묘자

그 한 아기, 한 아들의 이름이 우선 <기묘자>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wonderful(놀라우신 분), 독일어 성경에서는 wunderat(경이로우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 주님의 존재의 비밀, 존재의 신비를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이야 말로 얼마나 신비한 분이십니까? 얼마나 불가사이한 분이십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아니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 아니십니까? 그렇다고 반신반인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사람 아니십니까? 이는 누구도 이성으로는 합리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고 해명할 수 없는 비밀이요 성탄의 신비 아닙니까? 그래서 7백년 전 아시야 선지자가 이미 그 존재를 <기묘자>라 명명한 것입니다.


모사

사실 이 칭호는 우리말 어감상 썩 좋은 말 같지는 않습니다. <계략을 꾸미는 사람,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로 이 말을 <모사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참 뜻은 <상담자>이고 실제 영어성경에서는 <카운슬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상담자이고 참된 멘토십니다. 어떤 문제 어떤 고민도 좋습니다. 그분께 내놓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보다는 다소 열등한 하나님이 아니라 본질상 성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란 숫적으로 한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빌 2:6) 그랬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그것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왕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 땅에는 전쟁과 분쟁과 갈등과 반목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평화의 왕을 모시고 사는 자들은 감히 남이 헤아리지 못하는, 남이 빼앗거나 세상이 유린할 수 없는 평화를 누리며 삽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불안하고 요동해도 평화의 왕을 모신 사람들의 심령은 평안합니다. 주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평화의 왕다운 말씀이십니까? 올해도 평강의 왕이신 주님을 모시고 늘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