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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학자들은 지구 환경의 파괴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될 경우 향후 50년 내에 생물들의 4분의 1 가량이 멸종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lt;멸종&gt;은 맑고 깨끗한 심령을 가진 인간 유형이 점차 이 지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환경위기나 생태학적 파국도 결국 육신과 정신이 시커멓게 오염된 사람들로 가득 찬 인간 공해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br><br>인류의 역사를 구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영을 받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뿐이라는 것, 그게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선포된 메시지의 요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120명의 성도들이 소위 &lt;방언&gt;을 통해 그 사실을 증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언이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lt;신령한 언어&gt;를 뜻하기보다 &lt;각 나라의 언어&gt;를 의미했습니다. 물론 방언 중에는 바울이 말한 이른바 신비한 &lt;영적 언어&gt;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때 나타난 방언은 분명 &lt;각국의 언어&gt;였습니다.<br><br>따라서 이것은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자리에 서서 뜻을 서로 통하고자한 대화의 가장 모범적인 원형이라 하겠습니다.  당시 세계 도처에서 온 순례객들이 성령에 취한 성도들의 방언을 각자 자기 나랏말로 들으며 놀라워했다는 것은 결코 성령에 의한 외국어 습득 능력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초대 기독교가 자신들의 언어와 논리만을 도도히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존중하며 겸손하게 그 세계로 들어가려는 자세를 이방 선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lt;나&gt;만 고집하지 않고 &lt;너&gt;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lt;너의 언어&gt;를 나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의사소통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방언이야말로 강자들의 &lt;일방통행적 언어질서&gt;에 대한 도전이자 &lt;하나님의 영&gt; 안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엄숙한 선언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출신, 문화, 계급, 성별의 차이를 뛰어넘어 누구와도 뜻이 통하고 말이 통했던 초대교회 소통의 진정한 힘이었던 것입니다. <br><br>어디 그뿐이었습니까? 오순절 성령강림 때 제자들이 방언을 통해 증거한 중심 메시지는 &lt;주님의 부활&gt; 아니었습니까? 따라서 방언은 철저한 &lt;생명의 언어&gt; 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초적 방언이야말로 폭력과 살인, 미움과 증오의 광기에 사로잡힌 이 세상 언어들을 정화하고 사랑과 평화, 창조와 생명의 언어를 부활시켜 사람들을 구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br><br>하여 오늘 우리도 이 &lt;생명의 언어&gt;인 방언을 사모할 일입니다. 그게 인간 공해에 찌든 이 지구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일 터 ...<br></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