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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9년 5월 24일 주일낮예배<br>본문: 출 20:3-6<br>제목: 자손 천 대까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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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p>
<!-- paragraph:p0003 -->
<p><br>제가 봉독한 5절 하반절이하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말씀을 예사로 듣습니다. 그저 성경에 나오는 수사쯤으로 생각하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유전이 무엇입니까? 부모나 조상의 형질이나 특징이 유전 인자를 통해 그 후손에게 대물림 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후손은 조상을 닮습니다. 누구도 이 유전질서를 비켜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전에는 생물학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지능이나 재능, 성격, 정서, 그 사람의 인간성과 도덕성 같은 정신적 유전도 있습니다. 또 죄와 저주, 은혜와 축복이 대물림 되는 영적 유전도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대물림되는 원죄 개념이나, 죄를 갚되 삼사 대까지, 은혜를 베풀되 천 대까지라는 말씀은 영적 유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험을 들 때 혹은 문진표 작성할 때 묻는 게 가족 병력입니다. 이게 다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저주도 불행도 은혜도 축복도 당대로 끝나지 않고 대물림 됩니다. 정신적 유전, 영적 유전이 훨씬 생물학적 유전보다 심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나쁜 전통을 집안 내력으로 생각하며 숙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술로 패가망신하면 아들도 자기가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의 생활을 답습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노름으로 망하면, 그 후손도 도박에 빠져 삽니다. 성경에도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미인이던 아내 사라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아내를 누이로 속입니다. 재밌는 것은 후에 그 아들 이삭도 위협이 닥치니까 아내 리브가를 자기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 이삭의 아들 야곱도 염소를 잡아 자기가 사냥한 고기라며 별미를 만들어, 염소 가죽을 팔과 목에 감고 눈 먼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자기가 에서라고 합니다. 에서는 몸에 털이 많았는데, 아버지께 만져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장자에게 내리는 아버지의 최후 축복기도를 훔칩니다. 훗날 야곱도 자기 아들에게 똑같이 당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기고, 염소를 잡아 요셉의 겉옷에 피를 묻혀 아버지 야곱에게 가져와서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었다고 속입니다. 이게 다 우연일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거짓의 유전이고, 죄의 대물림이며 악순환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생물학적 유전이나 정신적 유전은 인정하면서도 영적 유전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부모나 윗대 조상의 삶과 신앙이 자손의 삶과 운명에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조상의 죄, 부모의 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담의 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가 받은 저주로 내가 죄를 받아야 하는지를 항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상이 대한민국 사람이어서 나도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신분이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기에 나도 죄인입니다. 아비가 죄를 지었기에 그 자식과 자손들도 그 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이 경건한 가계를 만들고 경건한 자손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경건치 못한 사람은 계속 저주 받은 가계를 대물림합니다. 이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 입니까? 내가 악을 심으면 내 후손이 저주를 거둡니다. 내가 의와 믿음을 심으면 반드시 그 자손들이 그것을 수확합니다. 나는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을까? 나는 악하게 사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리 삶이 험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언 26장 2절을 보면 ‘까닭 없는 저주는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나 조상으로 물려받은 저주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유전되는 저주를 쓴 뿌리라고 합니다. 구약의 오므리 왕가를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6대왕입니다. 그의 아들이 그보다 7배나 악했다는 아합 왕입니다.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은 이방 시돈 왕의 딸입니다. 바알 신전의 여사제였습니다. 그런 여자를 아합 왕이 아내로 맞은 겁니다. 그러니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몰아갔습니다. 그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는 한 술 더 떠 아버지를 비웃으며 온갖 나쁜 일을 다 했습니다. 창문 난간에서 떨어져 죽자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되었는데, 여호람은 이전의 왕들보다 훨씬 더 잔혹했습니다. 여호람에게는 여동생 아달랴가 있었는데, 그녀는 장차 왕위를 이을 자기 조카를 다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죄가 극대화됩니다. 헤롯 가문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예수님을 해치기 위해 영아를 살해한 사람이 헤롯 대왕입니다. 그 다음이 헤롯 안티바스입니다. 그는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사실을 세례 요한이 지적하자 세례 요한을 잡아 목을 베고 쟁반에 담아 헤로디아에게 바쳤습니다. 제 3 대 왕이 헤롯 아그립바인데 그는 사도 중 최초 순교자인 야고보를 살해했고, 베드로까지 살해하려고 체포했는데, 천사가 베드로를 구해주었습니다. 다음 제 4 대 왕인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바울을 체포해서 신문했습니다. 그 와중에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확인하고 로마로 보낸 겁니다. 헤롯의 가계는 아그립바 2세에게서 끝납니다. 그가 왕위를 잃고 베스비우스 산에 가는데 그 때 화산이 터져 매몰되어 죽습니다. 죄가 죄를, 저주가 저주를 낳다가 망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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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흔히 부모들은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내 자식이나 내 자손들만큼은 이런 삶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큰 불행이나 아픔이 내 세대에서 끝나고 자식 세대에는 무언가 새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반드시 죄와 저주의 대물림의 고리는 끊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끊어야 합니까? 노아의 아들 함과 그 아들 가나안 족속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이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고벗고 자는 것을 동네방네 다니며 비웃었습니다. 다른 아들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쳐서 노아에게 가서 수치를 가려주었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저주하기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잘못은 함이 했는데, 그 아들 가나안까지 벌을 받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짐승까지도 다 멸절하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의 최후 운명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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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여기서 우리는 주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저주에서 열외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입니다. 그녀는 가나안 족속의 창녀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 남아 택한 백성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보아스에게서 오벳이, 그 오벳에게서 이새가, 대를 거듭하여 결국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결국 믿음만이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저주의 사슬을 끊을 수 있습니다. 라합은 비록 저주받은 가나안 족속이었지만, 함의 후손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반열에 들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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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저주는 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누구든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온갖 저주와 재앙이 다 우리의 가계와 가정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이사도 못하고, 벽에 못 하나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일일이 점쟁이한테 가서 날을 받아 와야 했습니다. 귀신 때문에 장사도 사업도 함부로 길을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믿고 그 모든 저주의 사슬에서 벗어났습니다. 대대로 유전되던 재앙의 고리를 다 끊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운명과 가정과 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마귀와 저주가 우리 가정을 가계를 넘보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켜야 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요 책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입니다.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분명 귀신이 쫓겨나고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소제되었으나, 이 귀신을 보십시오. 쫓겨나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그 집에 와서 보니 이게 웬 떡입니까? 집이 청소되고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똬리를 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 믿음으로 저주의 고리를 끊었음에도 마귀에게 농락당하며 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하게 된 내 심령을 비워둘 게 아니라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만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마치며 경고하셨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자녀가 잘되고 자손 천 대까지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포악한 귀신으로부터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까? 무당 찾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소제된 집을 방치하지 마시고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이게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되는 온갖 재앙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십시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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