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7m: 남자와 여자(창 2:18-25) 청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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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7일 주일낮예배/청년주일
본문: 창 2:18-25
제목: 남자와 여자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주제를 남자와 여자로 잡았습니다. 남자가 먼저입니까? 여자가 먼저입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같은 겁니까? 여자가 남자를 낳았습니까?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습니까? 우리 상식과는 달리 성경은 남자가 먼저라고 합니다. 여자는 나중에 남자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8절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그런데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남녀가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인데, 창조의 우선순위는 남녀가 다릅니다.
사람 창조의 과정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자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담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과정이 나오는데, 첫째 날은 빛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고, 둘째 날은 궁창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셋째 날은 나무와 채소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고, 넷째 날은 별을, 다섯째 날은 짐승들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여섯째 날 창조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을 만드시고 나서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창조하시고도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까?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장 18절을 보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른 만물들은 창조하시고 아름다워 하셨는데, 아담을 지으시고는 오히려 혼자 있는 게 고독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배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남자는 처음부터 돕는 배필을 필요로 했던 2%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하와는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본문 21절 이하입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우선 여자는 남자와 동시에 만들어지지 않고 나중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남자가 기득권을 주장합니다. 또 여자들은 기분 나빠 합니다.
그러나 원래 나중에 만든 게 더 좋습니다. 제품 같은 것들 보십시오. 나중에 만든 게 제일 좋은 겁니다. 여자들은 남자의 갈빗대로 자기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다지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자들도 이것 때문에 여자들을 부속품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지만, 여자는 갈빗대로 만들었습니다. 흙은 1차 산업이고, 갈빗대는 2차 산업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여자가 남자보다 완성도가 더 높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자가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자들은 하나님의 첫 작품이기에 세련미가 떨어집니다. 유전학적으로도 여자가 염색체가 하나 더 많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보고 감탄한 말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 엑기스다라는 말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여자가 더 우위에 있습니다. 남자에 비해 여자들이 훨씬 더 교활합니다. 선악과도 누가 먼저 따 먹습니까? 여자가 타락의 주범입니다. 그만큼 영악했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바보 같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니까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여자는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고 했습니다. 남자는 쳐다도 안 봤는데, 여자는 늘 쳐다보았습니다. 여자가 얼마나 적극적인지 모릅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도 따 먹습니다. 겁이 없습니다. 남자는 우직하고 그래서 차라리 순진한데, 여자는 얼마나 약삭빠른지 모릅니다. 남자는 기껏해야 몇 백 만원이지만, 여자는 한 건 하면 수 천 만원입니다. 별 볼일 없는 월급쟁이가 어느 날 갑자기 강남으로 이사했다 하면 틀림없이 여자들이 부동산 투자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돈 받은 사람이 부인입니다. 1억짜리 손목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사람도 그 부인입니다. 여자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어기고 도전한 사람이 여자인데, 그러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여자가 제일 무섭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목숨 걸고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가져 오는 것이 금, 은, 보석입니다. 이것을 가져다가 여자들에게 바칩니다. 남자들은 하루 종일 일하느라 애쓰는데, 여자들은 카페 순례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것인가를 물으면 매번 65% 이상이 지금 남편과 결혼할 일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번에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우선 여자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에베소서 5장 22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골로새서 3장 18절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3장 1절에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절 이하입니다.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하와는 남편과 아무 상의 없이 혼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이 여자를 남자의 통제 하에 두신 겁니다. 여자가 마귀와 수작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이런 위계질서를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이 질서를 거역하고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그 가정의 행복은 깨집니다. 늘 불화와 상처뿐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가정의 위계질서를 깨면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현대 가정의 비극은 여성들이 가정의 위계질서를 깨트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의 권위에 불복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진부한 소리가 아닙니다. 이제는 자녀들도 부모에게 순복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사라졌으니 아이들이 질서를 배울 데가 없어진 겁니다. 부모의 권위를 배울 데가 없어진 겁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남편들이 아내에게 설설 깁니다. 이것은 성서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과장이 아니고 지금도 유효합니다.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칙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면 가정은 불행해집니다. 새벽기도 하라, 여전도회 하라, 기도원가라, 목사에게 잘 하라가 아니라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다음은 남편입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은 주께서 교회를 위하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에는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남자는 흙에서 왔기에 늘 흙을 만져야 가정을 지킬 수 있고, 여자는 늘 남자의 품에 있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품에 있어야 행복합니다. 남자는 여자가 없으면 갈빗대가 하나 없는 장애인이고, 여자는 남자 품에 있지 않으면 정말 초라합니다. 그냥 갈빗대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치는 것은 자기 옆구리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남자도 아픕니다. 자기 갈빗대를 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한 치도 틀림이 없는 말씀 입니다.
물론 남편의 사랑도 아내의 순종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이 없으면 가정의 행복은 없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남자와 여자는 대체 무엇이고, 부부는 어떠해야 하며, 행복한 부부와 가정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십시다. 아내는 복종을 남편은 사랑을 결단하는 복된 가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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