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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5월 17일 주일오후찬양예배/청년부헌신예배<br>본문: 엡 5:15-18<br>제목: 사랑의 자녀 빛의 자녀</p>
<!-- paragraph:p0002 -->
<p>[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p>
<!-- paragraph:p0003 -->
<p><br>에베소서 5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또 8절 말씀입니다. “...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1절과 8절에 나오는 사랑과 빛의 자녀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청년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며 행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다 빛의 아들 딸들입니다.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 사랑의 자녀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p>
<!-- paragraph:p0004 -->
<p>우선 성경은 지혜롭게 행하라고 합니다. 15절 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어떤 사람이 지혜롭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자입니까? 15절 말씀에 의하면,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자세히 주의해서 처신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세히 주의하다는 말은 원어적으로 전체를 살핀다는 말입니다. 전후 문맥을 본다는 뜻입니다. 전체 그림을 조망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전후 문맥을 보지 못하고, 항상 코앞만 눈앞만 봅니다. 그게 전부인줄 압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과 젊은 청년들 중 누가 어리석습니까? 당연히 청년들이 어리석습니다. 왜냐면 연세 드신 어른들은 정보는 별로 없으나 지혜는 있습니다. 삶의 연륜에서 오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앞뒤를 볼 줄 압니다. 전체 그림을 볼 줄 압니다. 그래서 눈앞의 현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지식과 상식은 풍부하나 지혜롭지 않습니다.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목숨을 걸기에 어리석다는 겁니다. 원래 하나님은 전체 우주를 경영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눈앞의 현실에 연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전체 그림을 살피면서 현실을 관장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우리가 아무리 발을 굴러도 하나님은 거기에 연연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시야를 닮아 가는 게 지혜로운 삶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사람이 처음 믿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체험을 통해 처음 신앙을 가진 사람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 체험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래서 장로님, 구원받았습니까? 목사님,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닌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있는 자처럼 전체 그림을 살피면서 처신하라고 합니다. 이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입니다. 지혜는 삶의 경륜입니다. 지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 없는 청년들은 경박하고 단순합니다. 부분에 연연하거나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체 그림을 조망하며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것이 성경이 청년들에게 하는 첫 번째 당부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두 번째는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월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시간 중에서도 질적인 시간입니다. 일상적이거나 양적인,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소중한 시간,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라는 말의 반대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양적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부 이름이 카이로스입니다. 아끼라는 말은 그리스 말로 ‘엑사고라조’입니다. 속량이란 뜻입니다. 일상적인 시간을 값비싼 댓가를 주고서라도 질적인 시간으로 사고 바꾸라는 겁니다. 이것은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도 군에 많이 가있습니다. 제가 논산훈련소에 처음 입대했을 때에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너희는 이제부터 관물이다.’ 그다음에는 제식훈련을 합니다. 이것은 무슨 훈련일까요? 이것은 발맞추기 훈련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는 훈련입니다. 이제 관물이 되었기에 국가가 지시하는 대로 우향우, 좌향 앞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함을 배웁니다. 우리는 다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다 사랑의 자녀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옛날 어둠의 자식일 때는 마귀가 지시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함부로 처신하면서 살았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소유이기에 주님의 분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일상적인 시간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시간으로 살되,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때가 악한데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때가 가까웠다는 것은 종말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악하고 악하면 마지막이 옵니다. 우리는 지금의 때를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없습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입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마지막 때가 되면 지식이 고도화되고 사람의 왕래가 빠를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 정보통신 사회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즘 얼마나 바쁘고 빠르게 살고 있습니까? 삶이 편리하게 되었으나 바쁘긴 더 바쁩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정신이 없고 바쁩니다. 요즘은 바쁘다고 하면 주일성수 안 해도 되고, 바쁘다고 하면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시간을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속량하라는 겁니다. 주님도 30세 청년 때 공생애에 투신하셔서 전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청년들이여, 시간 핑게 대지 마시고 세월을 속량하십시오.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사십시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님의 시간으로 바꾸십시오. 주님의 심판이 박두했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마지막으로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어떤 청년이 이 말씀을 보고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술 안 취할 만큼만 마시면 되겠구나 하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이것은 술이 아니라 성령충만에 관한 말씀입니다. 술과 성령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주 자를 술 주 자로 이해하는데, 이건 잘못된 겁니다. 술과 성령은 둘 다 그것의 지배를 받으면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없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못하던 일도 술이 취하면 기발한 일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노선 버스를 막고 거기에 소변을 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게 맨 정신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술이 시킨 일입니다. 평소에는 몇 천원도 벌벌 떨던 사람이 술 취하면 십 만원권 수표를 꺼내서 아이들에게 줍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이 술이 취하면 옷을 사준다고 합니다. 술이 그 사람의 대뇌를 지배하는 겁니다. 성령에 취해도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장 12절 이하를 보면,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 성령강림을 목격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들이 다 새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하기 전에는 겁에 질려서 안으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으나, 성령충만해지자 환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정말 겁 없이 백주에 예루살렘 거리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예를 들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이게 입에만 가능하지 실제로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의 사랑입니다. 적어도 교회가 말하는 사랑은 원수 사랑입니다. 원수는 미워하고 저주해야 하는데, 원수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도, 그럴 근거도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아가페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취하면 이게 가능합니다. 자기 감정, 정서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성령충만하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됩니다. 맨 정신으로는 안 되는 일도 성령충만하면 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성경은 우리 빛의 자녀들, 사랑의 자녀들인 청년에게 그런 삶을 주문합니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이 평소에 할 수 없던 행위를 하듯이 성령충만해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들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청년들에게 당부하는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전체를 살피며 신중하게 처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세월이 악합니다. 주님이 이제 곧 박두하십니다. 악한 시간을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아름다운 시간으로 속량하십시오. 성령충만하셔서 귀한 일, 위대한 일들을 많이 하시는 푸른교회 청년들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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