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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m: 형통과 장수(엡 6:1-3) 어버이주일

2009년 5월 10일 주일낮예배/어버이주일
본문: 엡 6:1-3
제목: 형통과 장수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루터는 신약 에베소서를 주석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모든 가정은 작은 천국 아니면 작은 지옥이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느 쪽입니까? 마음속으로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세상 모든 가정이 작은 천국 아니면 지옥인데, 우리의 가정은 어느 쪽입니까? 천국이라고 하기엔 어림도 없고, 그렇다고 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참합니까? 우리 개신교의 사전에는 연옥이 없습니다. 연옥이 있으면 편리한데 말입니다. 불교에도 연옥 개념이 있습니다. 중도 내지 중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고, 구원 아니면 저주고, 여호와 아니면 바알압니다. 뜨겁지 않으면 차가운 것이지 미지근한 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완충지대란 없습니다. 우리 가정도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인데,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한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되기 위해선 전제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6장은 한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되는데 여러 조건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말합니다.

우선 1-2절입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모에 대한 순종이나 복종은 윤리나 도덕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계명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는 윤리도덕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의 차원입니다. 그래서 이유가 없는 겁니다. 변명이나 핑계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인데 거기에 무슨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우리 삶에서 관철해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계명 중에서도 어떤 계명이냐면, 2절 하반절입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보통 계명이 아니고,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잘 아는 대로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올 때 양 팔에 하나씩 들고 내려왔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천륜입니다. 1-4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번째 돌판은 5-10계명까지인데 사람이 이웃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이 부모 공경입니다. 효입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란 뜻은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이란 뜻입니다.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은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효입니다. 인륜의 첫 계명이 부모 공경입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선순위가 앞에 있을수록 중요합니다. 중요한 계명부터 배열한 겁니다.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이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약속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다른 계명은 약속이 없습니다. 다른 계명들은 다 외마디 명령으로 끝나는데, 유일하게 두 번째 돌판 첫 계명인 효에 관해서는 약속이 있습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본문 3절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합니다. 잘된다는 것은 형통하다는 겁니다. 장수한다고 합니다.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늘 기도하는 게 만사형통과 무병장수 아닙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은혜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날마다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체크해 보면 바로 만사형통 무병장수 아닙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이게 효에서 옵니다. 이것을 아셨습니까?

물론 유교에서도 효를 강조합니다. 살아계신 부모님뿐만 아니라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제사를 잘 지내야 자식이 잘되고 자손이 번성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생전에는 효하고는 전혀 상관없던 자식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는 잘 챙깁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서 제사 잘 지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에게 아무리 잘해도 복 받지 못합니다. 돌아가신 부모가 자손에게 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만사형통과 무병장수의 복을 베푸십니다.

정말 그런지 안 그런지 성경을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효자도 불효자도 많이 등장합니다. 유명한 불효자는 우선 노아의 둘째 아들입니다. 함입니다. 아버지가 포도주를 많이 드시고 주무시는데 함이 아버지의 치부를 봅니다. 이걸 동네방네 떠들고 선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둘째 아들 함을 저주하셨습니다. 평생 형제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결국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합니다. 전쟁에 좀 이겨볼까 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들고 나갔는데, 그것마저도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사무엘의 스승이었는데 놀라 나자빠져서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그렇게 망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유명합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장본입니다. 아버지를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압살롬을 피해 맨발로 왕궁에서 나와 피난길에 오릅니다. 결국 압살롬의 최후는 노새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자기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금발이 상수리나무에 걸립니다. 창에 옆구리를 찔려 개죽음을 당합니다.

반면에 압살롬의 이복형제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유사 이래 가장 훌륭한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필생의 사업을 이룬 겁니다. 다윗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머니 밧세바를 얼마나 지성으로 섬겼습니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 밧세바와 백성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효를 맹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을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는 부귀와 영화의 화신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그리고 기독교가 왜 이렇게 효를 강조합니까? 신명기 21장 18절 이하를 보면 패악 무도한 자식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을 보면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고, 잠언 30장 17절을 보면 부모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힌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효는 왜 이토록 과격합니까? 왜냐면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의 연장입니다. 부모 공경 없이 하나님 공경은 없다는 겁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집행하는 대리인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모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입체입니다. 우리 앞에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부모를 보면서 하나님을 연상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며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효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유별난 겁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오. 부모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잘 하십시오. 그래야 복 받고 우리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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