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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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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신경숙의 소설 &lt;엄마를 부탁해&gt;의 첫 구절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며 &lt;오늘 엄마가 죽었다&gt;로 시작되는 까뮈의 &lt;이방인&gt;을 떠올렸습니다. </p>
<!-- paragraph:p0002 -->
<p>신경숙의 소설은 참 오랜만입니다. &lt;풍금이 있던 자리&gt;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풋풋한 서정성이 좋았고, &lt;외딴방&gt;은 불편했으며, &lt;바이올렛&gt;은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웠는데 이 &lt;엄마를 부탁해&gt;는 자칫 신파조로 빠질 수도 있는 주제를 절절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역작으로 보입니다.<br><br>어머니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어머니로서, 한 아내로서,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란 대체 어떤 인생일까? 흔히 생각은 하지만 또 애써 외면해 온 이 쉽지 않은 물음에 소설은 가슴 아프게 답하며 중간 중간 독서를 멈추고 회한의 눈물까지 흘리게 할 만큼 먹먹한 감동도 선사합니다. <br><br>갈피마다 서려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머니 얘기를 세밀한 문체와 섬세한 내면 묘사로 물 흐르듯 정감 있게 전개하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 속 화자의 고백이 곧 자신의 고백인듯한 느낌에 푹 빠지게도 하는 신경숙 소설의 정점이라 할 만한 작품입니다.<br><br>늘 우리 곁에서 무한정의 사랑을 베풀기만 하던 엄마, 그래서 언제나 그렇게 존재할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어느 날 실종됨으로써 시작되는 소설의 도입부는 마치 추리소설과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더 합니다.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된 소설 속의 엄마는 곳곳에 흩어져 사는 아들딸들에게 김장을 해 나르고, 청국장과 된장을 부치고, 매실이며 온갖 과일주를 담궈 놓고 명절에 찾아와 그 술병을 비워 주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엄마였습니다. <br><br>소설은 각 장마다 화자가 다릅니다. 1장은 딸, 2장은 아들, 3장은 아버지, 4장은 엄마, 에필로그는 다시 딸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신문광고를 내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과정에 가족들이 등장해 각각 자신의 관점에서 엄마의 인생을 회고적으로 추적해가는 형식인데, 우선 첫 장을 펼치면 &lt;너&gt;라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2인칭이 눈에 턱 걸립니다. 그러나 거기서 몇 장만 더 넘기면 &lt;너&gt;는 더 이상 어색한 2인칭이 아니고 책을 읽는 &lt;나&gt;와 고스란히 겹쳐지면서 소설을 읽는 내내 삶은 계란을 소금도 뿌리지 않고 삼킨 듯 목구멍을 조이는데, 아마도 그런 죄의식을 피해갈 수 있는 자식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lt;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고, 모든 자식들의 고해성사&gt;라고 했습니다.<br><br>그렇습니다. 자식이나 남편에게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엄마고 아내였을 것 같은 어머니도 이전에는 한 소녀였고, 자기만의 숨겨진 사랑과 열정을 가진 한 여자였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저릿한 기억으로 전달됩니다. 소설 막판 큰 딸이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서 언젠가 엄마가 부탁한 장미 묵주를 삽니다. 그리고 피에타 상 앞에서 성모를 향해 나직이 기원합니다. &lt;엄마를, 엄마를 부탁해.&gt;</p>
<!-- paragraph:p0003 -->
<p>작가는 엄마의 실종을 통해 역설적으로 아직도 늦지 않았음을, 우리에게는 아직도 사랑할 시간이 남았음을 통절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br>이 사랑의 달에 일독을 권합니다. <br></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