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4m 다 이루었다(요 19:30) 종려주일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30324m 종려주일
요 19:30
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독일의 다카우는 어떤 곳입니까? 독일 사람들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가 있는 곳입니다. 악명 높았던 유대인 수용소가 있던 곳입니다. 다카우에서 10년 동안 20만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주로 가스실에 몰아넣고 죽였습니다. 그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지방을 추출해서 비누로 만들어 군대에 보급했습니다. 지금도 기념관에 인체로 만든 비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신에서 금이빨을 뽑아 금괴도 만들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유태인을 너무도 싫어합니다. 오죽하면 뱀과는 같이 자도 유태인과는 같이 못 자겠다고 하겠습니까? 히틀러는 이런 반 감정을 이용해 유태인을 무려 600만을 살해했습니다. 사실 히틀러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유럽인들이 공모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유태인들을 미워한 걸까요? 유럽인들의 반 유대정서의 뿌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저서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유대인입니까? 빌라도입니까? 가룟 유다입니까? 현장에서 주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 군인들입니까? 주범이 누구입니까?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분은 하나님입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이 완벽하게 그렇게 하신 겁니다. 로마서 5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약속대로 계획대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겁니다. 얼마나 완벽한 작품인지 오늘 본문 앞을 보십시오. 28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신 겁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각본대로 죽으신 겁니다. 본문도 그렇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 숨이 먼저 떨어집니까? 고개가 먼저 떨어집니까? 죽으면 자동적으로 고개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주님은 아무런 채비도 없이 죽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각본대로 죽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시간이 되니 주님이 고개를 숙였고, 하나님이 숨통을 끊은 겁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전에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하셨으면, 마지막에는 <다 망했다, 다 실패했다>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유사 이래 가장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분이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겁니까? 십자가 사건을 연출하신 하나님의 뜻, 각본, 계획, 비밀을 다 이루셨다는 겁니다. 인간 구원, 인간 구속의 프로젝트를 다 성취하셨다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도 어쨌든 이러한 선언입니다. 십자가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로 막판에 실패한 사건으로 끝난 게 아니라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관철한 인간 구원의 대서사시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대체 뭐 길래 인간 구원의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사실 주님이 거기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고 구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인간이 고안한 사형방법 중 가장 잔인한 사형대였습니다. 왜 십자가형이 무섭습니까? 절대 빨리 죽는 걸 허용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죽게 만든 형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고 창으로 찔러 빨리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루나 이틀, 건강한 사람은 사흘이나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어째서 십자가라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12절을 보면, “이것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다”고 합니다. 워낙 이 방법이 기상천외해서 하늘의 천사들도 좀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으며, 왜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야만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고유한 품성인 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첫째가 공의입니다.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의로우신 성질입니다. 공의라는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이 속성 때문에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관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절대 죄를 간과하실 수 없습니다. 바로 이 공의라는 속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에 상당한 벌을, 선을 행하면 거기에 상당한 상을 주셔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 자신을 범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나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모든 인생이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운명적으로 유전적으로 원죄를 뒤집어쓰고 때어납니다. 원죄를 갖고 태어나기에 우리는 자범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원죄와 자범죄의 관계가 이토록 운명적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죄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인생아 다 죄인이라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공의 외에 사랑의 속성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공의만큼이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대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는 겁니다.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의와 사랑은 이질적입니다. 대립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은 아예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공의를 내세워 모든 죄인을 심판하시려니 사랑이라는 속성에 걸립니다. 사랑을 내세우니 공의에 걸립니다. 이게 소위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제3의 속성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지혜입니다. 여기서 십자가가 착상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관철되는 십자가라는 해법이 나왔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다 이루셨다는 말씀은 공의도 사랑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천하에 둘도 없는 죄인으로 저주 받아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공의를 관철하신 겁니다. 주님 한 분을 저주하고 버리심으로 우리를 다 살리셨습니다. 사랑을 관철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는 말씀도 맞습니다. 우리 죄를 응징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도 맞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다 관철하셨습니다. 주님 한 분을 심판하여 우리를 살렸으니 사랑을 관철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칼 같은 공의와 한없는 사랑이 성취된 겁니다. 얼핏 보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지혜가 착상한 위대한 인간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바울이 고백하기를, “나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겠다, 나는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겠다, 나는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다짐과 고백입니다. 십자가만을 알고 전합시다. 종려주일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다. 십자가 가까이 다가가십시다. 십자가의 은혜와 은총이 여러분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YouTube 시청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