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7n 수난의 시(시 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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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7m
출 15:22-27
한 나무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5장의 구성을 보면, 1절부터 21절까지는 노래입니다. 무슨 노래냐면, 홍해를 건넌 직후에 부른 승리, 구원, 감격, 기쁨의 노래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였고, 양쪽은 온통 높고 험한 바위산입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성난 전차군단이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그 앞에 가로놓인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 한가운데에 길을 내셔서 200만도 더 되는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시고, 뒤따르던 애굽 군대를 수장하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감격과 승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른 노래가 1-21절의 개가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22-23절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승리의 감격의 노래도 사흘 만에 끝납니다. 그 사막에서 물이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천만다행으로 마라에서 물을 발견했습니다. 이제는 살았다며 안도했는데 그 물이 써서 못 마셨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룻기 1장을 보면 나오미가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기쁨인데, 마라는 괴로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게 광야여정이고 우리네 세상살이입니다. 물론 홍해도 마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왜 하나님은 홍해의 감격을 좀 더 오래 즐기게 하시지 않고 사흘 만에 다시 마라의 쓴물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여러분 가운데 한 때는 좋았는데 홍해도 건너면서 잘 나갔는데 지금은 쓰디 쓴 마라의 쓴물을 마시는 분 없습니까? 우리 삶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마라의 쓴물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본문 25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통쾌한 승리를 맛 볼 때뿐 아니라 목이 타들어 갈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지 아닌지 시험하기 위해 마라로 이끄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쓴물을 통해 인도하십니다. 평안할 때, 아픔이 오고 쓰디 쓴 고배를 마시면 비로소 그 사람의 진상이 드러납니다. 누구나 잘 나갈 때는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하면서 방방 뜨지만, 그러나 사흘을 가도 물이 없고, 겨우 찾아낸 물이 쓴물이라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다고 합니다. 모세를 원망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뜻입니다. 마라의 쓴물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는데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다가 마라를 만날 때 추한 인간성을 드러내지 않고 믿음을 드러내셔야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인생에 쓴물이 없는 게 아닙니다. 전에 없던 고난이 닥칩니다. 내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기 위해 고의로 시험을 당하게 하십니다. 쓴잔을 마시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살아가다가 마라의 쓴물을 만났을 때 실족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면밀히 살피시는 주님 면전에서 내 추한 인간성으로 불신앙을 폭로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나에 대해 안도하시게 해야 합니다.
마라의 쓴물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쓴물 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나무를 지적하며 그걸 물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쓴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여호와 라파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지시하신 그 나무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맹물을 포도주로, 기갈을 해갈로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병든 육체, 황폐해진 정신과 영혼, 비뚤어진 정서도, 병든 가정도 다 고치십니다. 한 나무로 고치십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지시하신 한 나무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는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본문 25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처방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수난기사를 보면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 달리신 십자가 주변에 온통 마리아뿐입니다. 요한 19장에 보면 모두 마리아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도 모두 마리아입니다. 물론 당시 가장 흔한 이름이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십자가 주변에 마리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뜻은 우아하고 성스럽고 고상할 것이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뜻 밖에도 마리아가 마라입니다. 마라 한복판에 주님의 십자가가 서있습니다. 이 얼마나 계시적입니까? 마라의 쓴물에 주님의 십자가가 던져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지척에 오아시스를 두고도 보지 못하고 목말라하는 인생을 엘림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지적하신 한 나무입니다. 주님 시대뿐 아니라 어느 시대나 가장 흔한 이름은 마라와 마리아입니다. 누가 인생을 달콤하다고 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고칠 수 없습니다.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인 십자가 아래에 엎드립시다. 거기에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내려놓읍시다.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내린 유일한 처방임을 믿어 의심치 맙시다. 그래서 쓴물이 단물로 변하고 마라가 엘림으로 새로워지는 복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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