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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aragraph:p000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2009년 4월 22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33<br>
본문: 히 11:33-34</p>
<!-- paragraph:p0003 -->
<p>[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p>
<!-- paragraph:p0004 -->
<p><br>
33절 하반절의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를 통해 다니엘을 살펴보았고, 34절 하반절의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에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를 통해 엘리야를 살펴보겠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잘 아는 대로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처단합니다. 바알 선지자의 배후에 있던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이 소리를 듣고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쳤고, 나중에는 로뎀 나무 아래에 쓰러져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음식을 주시며 격려하십니다. 엘리야처럼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도 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에녹처럼 죽지 않고 불 수레를 타고 천국으로 갑니다. 참으로 전설적인 사람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한다면, 엘리야는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변화 산에서 3자 회담할 때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 대표 엘리야를 만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이 엘리야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외칠 때 사람들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만큼 엘리야는 특별합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열왕기상 17장부터 나옵니다. 열왕기하에서 불수레를 타고 승천합니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그는 기도하여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되살려 냅니다. 그는 또한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도 기도하여 살려 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는 장면에서도 그는 기도합니다.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엘리야는 조목조목 기도했습니다. 불이 필요하면 불을 달라했고, 기름이 필요하면 기름을 달라 했습니다. 기도는 중언부언하면 안 됩니다. 엘리야처럼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소경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냐?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십니다. 기도가 막연하면 응답도 막연합니다. 기도가 모호하면 응답도 모호하고, 기도가 공허하면 응답도 공허합니다. 기도가 구체적이고 생생하면 응답도 그렇게 됩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통에 가루를, 병에 기름을 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8절을 보면 ‘구하기도 전에 너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절절한 바람을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더러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하십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게 하려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도 그걸 하나님의 은총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조상 덕이라고 할지언정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확신의 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의 기도의 확신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합니다.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상황에 제단에 제물을 쌓고 그 제물에 물을 부으라고 합니다. 물도 그냥 부은 게 아니고 제단 주변에 파놓은 고랑에 가득 찰 정도로 부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신 있다는 겁니다. 확신한다는 겁니다. 열왕기상 18장 41절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고 합니다.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아직 기도하기도 전인데 아합에게 걱정 말고 왕궁에 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기도하러 갑니다. 응답을 미리 듣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의 말씀 그대로 이지 않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아닙니까?’ 기도하기 전에 이미 응답의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도 너희가 믿고 기도한 것은 무엇이든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도의 치명적인 약점은 큰 회의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겁니다. 엘리야에게서 기도의 확신을 꼭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미 빗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큰 비를 주십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의 확신을 시험해 보십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안 던지십니다. 비오기 전에 빗소리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확신에 넘쳤으면 제물에 물을 붓습니까?</p>
<!-- paragraph:p0008 -->
<p>엘리야의 기도의 자세는 너무도 진지합니다. 간절합니다. 엘리야가 비를 달라고 무릎을 꿇고 거기에 얼굴을 박고 기도했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서서 두 손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합니다. 이게 전형적인 자세인데, 엘리야야 말로 그렇게 기도해야 폼이 나는 사람 아닙니까? 기도하기 전에는 그렇게도 자신 만만하던 사람이 막상 기도하면서는 간절합니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주님 같은 분이 이렇게 간절한 자세로 기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이런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그럼에도 그는 기도해서 비를 오게도, 안 오게도 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엘리야를 본 받읍시다. 엘리야처럼 기도하십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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