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419m: 필레오(요 21:3-17)

2009년 4월 19일 주일낮예배
본문: 요 21:3-17
제목: 필레오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본문 3절을 다시 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베드로를 위시한 갈릴리 출신의 몇몇 제자들이 낙향해서 옛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다는 얘깁니다. 이때는 이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최소 두 번은 뵈었습니다. 그 앞 장인 20장 19절 이하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게 부활하신 주님과의 첫 번째 해후입니다. 두 번째는 20장 26절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이게 두 번째 만남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두 차례나 생생히 체험했는데 어째서 고기 잡으러 가겠노라고 한 것일까요? 특히 여기에는 베드로가 앞장섰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베드로 같은 경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과 실망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자신의 뼈아픈 실패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는 부활하신 주님을 뵐 면목이 없고, 부활을 기뻐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상처를 털어낼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장담한 게 워낙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같이 죽겠다고 했었는데, 일개 여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세 번이나 저주했습니다. 아무리 닭소리를 듣고 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우울증에 걸린 겁니다. 두 번이나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지만 낙향한 겁니다. 내가 무슨 제자라고 ... 나 같은 놈은 물고기 잡는 게 내 분수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릴리에 나가보니 옛날 같지 않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쳤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고, 이제 철수하려고 하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반신반의하며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 장면은 3년 전 베드로가 주님을 처음 뵐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고기를 많이 잡았고, 그때 주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3년 전 그 첫 소명의 자리에서 베드로의 재 소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뭍으로 나오자 주님은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은 숯불입니다. 물론 추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때도 숯불이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는 그냥 불인데, 요한복음은 숯불이라고 합니다. 숯불 가에서 실패했기에 다시 숯불 가에서 베드로를 회복시키고 있는 겁니다. 아마 베드로가 숯불을 보았을 때 그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을 겁니다. 게다가 저 멀리 마을에서 새벽 닭소리까지 들리는 겁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때 듣던 바로 그 닭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드디어 주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에서는 숯불 가에서 주님이 같은 질문을 세 번 하십니다. 왜냐면 숯불을 쬐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한 영혼을 치유하시는 그 세심한 배려를 보십시오. 상황설정을 그대로 해놓고는 고도의 영적 처방을 내리고 계십니다. 숯불 가에서 세 번 부인한 것을 다시 숯불 가에서 세 번의 질문으로 다시 회복하고 계신 겁니다. 주님이 다른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책망의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만 확인하십니다. 왜냐면 첫 사랑이 회복되어야 아픈 상처도, 처음 사명도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살인하고 도적질하는 것도 큰 죄이지만,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는 것도 죄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책망한 것이 바로 첫 사랑을 버렸다는 겁니다. 초심을 버리면 주님께 책망을 듣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확인하고픈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 소유가 아닙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을 잃어 버리면, 주님에 대한 애정을 잃어 버리면, 모든 게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며 물으실 때 사랑이란 어휘와 베드로가 대답할 때 사용한 사랑이란 어휘가 다릅니다. 우리말로 사랑으로 번역되었으나, 헬라 말에서는 사랑이란 종류가 네 가지입니다. 에로스, 아가페, 스톨게, 필레오입니다. 스톨게는 형제 간의 사랑, 동족 사랑 같은 겁니다. 필레오는 우정 같은 것을 뜻합니다. 에로스는 성적 사랑이고,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필하모니 할 때 바로 필레오입니다. 하모니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필라델피아할 때 델피아 곧 신전 사랑입니다.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대답한 사랑은 ‘필레오’입니다. 우정 같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로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주님의 세 번째 물음입니다. 주님은 첫 번과 두 번째 질문은 아가페로 물으셨으나, 세 번째는 필레오로 묻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이 양보하신 겁니다. 두 번이나 묻는데 여전히 베드로는 아가페는 벅차고 자신이 없다며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가페를 철회하시고 필레오로 묻습니다. 상대적인 사랑으로라도 나를 사랑하겠느냐는 겁니다. 세 번째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베드로가 옛날 같으면 아가페로 대답했을 겁니다. 베드로는 이제 주제 파악을 한 겁니다. 겸손히 필레오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이 받아주신 겁니다. 신적인 사랑인 지고지순한 사랑을 철회하시고, 상대적이고 인간적인 필레오, 우정 같은 사랑을 용납하신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다시 새 출발 하게 하십니다. 아가페 수준이 못 되는데 자꾸만 그 수준을 요구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이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든, 얼마나 자주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고 욕을 보였더라도, 다시 찾아오신 주님 앞에 확실하게 고백하십시다. 아가페는 면목이 없고 필레오 같은 사랑은 한다고 고백합시다. 그래야 내 상처가 치유되고 첫 사랑이 회복됩니다. 그래야만 내 사명과 소명이 다시 새로워집니다.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도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불 같은 생을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부디 첫 사랑을 되찾고 초심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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