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419n: 도마 이야기(요 20:24-29)

2009년 4월 19일 주일오후찬양예배
본문: 요 20:24-29
제목: 도마 이야기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이 좋아서 유명해진 게 아니고, 의심이 많아서 유명해 졌습니다. 그는 얼마나 지독한 회의주의자였는지 모릅니다. 25절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눈으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못자국에 손을 넣고, 허리 창자국에 손을 넣어봐야 하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철저한 실증주의자인지 모릅니다. 그는 본래 갈릴리 출신으로서 어부였습니다. 도마(Thomas) 라는 이름의 뜻은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실제 쌍둥이었나 봅니다. 혹 여러분은 도마의 쌍둥이 형제자매가 바로 “나” 라는 생각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이고, 집단적으로는 현대인입니다.

어째서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였고, 어째서 우리는 도마의 쌍둥이 형제자매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교회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파와 만나지 못한 파가 서로 대립합니다.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주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 본 파가 이깁니다. 그러면 저처럼 믿음 좋은 사람도 아직 주님을 만나 뵙지 못했는데, 만져보기는커녕 가끔 허리가 아파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별 응답이 없고, 바울 같은 사람도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낫게 해 주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허리 아픈 것 안 낫게 해주어도 믿음을 잃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보다 믿음에서 진도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도마에게 상처 자국을 만져보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 본 사람을 신령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절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무슨 뜻입니까? 기어이 만져보지 않고 믿지 못하겠거든 만져보라는 겁니다. 그래도 안 믿는 것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그러나 체험하는 것보다 체험하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안 만져보고 믿는 게 훨씬 좋은 믿음입니다. 도마가 만져보고 ‘내 주 내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는데, 예수님은 멋진 신앙고백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보지 않고 믿는 게 더 복되다고 하신 겁니다. 사실 부활하신 주님의 상처자국을 만져보고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허리 아픈 거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제 믿음이 대단해서 그런가 봅니다. 바울도 몸의 가시 없애주지 않으시면 선교 못하겠다고 했으면 아마 주님이 뽑아주셨을 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는 못 믿겠다고 난리를 피우면 주님은 어떤 식으로든 보게 하십니다. 꿈이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보게 하십니다. 물론 체험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체험적인 신앙도 좋지만 오히려 체험 없이 믿는 신앙이 더 복됩니다. 체험에 목 매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노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노아도 만일 보고 믿었다면 절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주님으로부터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주님을 따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말씀이 아니라 직접 만져봐야 믿겠다며 강력한 불신앙을 드러낸 도마의 쌍둥이 형제가 아니라, 말씀만으로도 믿는 신자가 되십시오.

그래도 주님이 도마를 사랑하셔서 선교사가 되는데, 이디오피아와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도를 하다가 결국 인도 동쪽 지방, 갈마니아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참수당합니다. 갈마니아 지방에는 도마의 성지가 많습니다. 도마의 무덤, 도마의 미이라 위에 세워진 도마교회도 있습니다. 도마가 기도했던 동굴, 그가 피신했던 도마 산도 있고, 도마의 샘물이란 곳도 있습니다. 도마의 흔적이 많습니다. 봐야 믿겠다며 의심하던 제자였지만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후에는 훌륭한 사도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순교로 생을 마감하게 하셨습니다. 도마에게 베푸신 주님의 축복이 어쩌면 도마의 쌍둥이 형제자매일지도 모르는 우리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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