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0n 섬김(행 2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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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0n 남선교회 헌신예배
행 20:17-28
섬김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바울 사도는 동분서주했습니다. 자신의 반생을 주를 위해 아낌없이 불살랐습니다. 그는 한 군 데 오래 머물지 않고 급히 이동하며 복음을 전하며 세운 교회를 단속했습니다. 본문에는 에베소가 나오는데, 바울이 여기서 3년 간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오래 머문 곳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공을 많이 들인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중심교회가 된 겁니다. 두란노서원이 바로 에베소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다른 교인보다 잘 교육이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은 3년간 목회하던 에베소를 떠나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떠나는 장면이 우울합니다. 성령이 강제하셔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되는 겁니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여러 곳에서 이미 성령이 자신에게 계시하셨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된다는 것을 계시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길을 성령이 강제하시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신이 세운 장로들을 모아 놓고 최후 설교를 하는 대목이 오늘 본문입니다.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이미 성령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되어 다시는 석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장로들에게 고백한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지금까지 하던 사역을 여러분께 위임하니 잘 계승하기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온 양 떼를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지금은 남선교회 헌신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사명자로서의 동일성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복과 양 떼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감독자, 임직자의 직분, 제직의 사명을 위탁하셨습니다. 28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주님의 양 떼들을 위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사역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특별히 장로들만을 따로 불러 당부한 것은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니 사역을 잘 계승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선 19절 하반절을 보면, ‘모든 겸손’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3년 동안 겸손으로 사역했다는 겁니다. 모든 겸손은 말, 처신, 생각, 몸짓, 표정에 이르기까지 겸손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모든 겸손입니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나, 원래는 사울, 곧 큰 자였습니다. 정말 그는 큰 자 다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만한 하늘을 찔렀습니다.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라는 것은 정통 유대인에, 바리새인은 귀족 출신, 가말리엘 문하생은 최고의 엘리트, 로마 시민권자는 유대 사회의 특권층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예수 믿고 바울이 되었습니다.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라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왜 사역자는 겸손해야 할까요? 겸손해야 씨가 먹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야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습니다. 교만하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독불장군입니다. 자기 말이 진리입니다. 원래 겸손은 종, 노예의 미덕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겠다고 했습니다. 종의 자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안 먹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 앞에서 결단하고 순종하게 되는데 그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노예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무조건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은 표정 하나에도 겸손했노라고 합니다. 주님의 면전에서 교만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야 그 말씀에 내가 반응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몸짓으로 주님이 분부하신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 되시고 남선교회 회원들 되시길 빕니다.
다음으로는 ‘눈물’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은 특별히 바울의 눈물로 얼룩진 장입니다. 바울의 눈물 때문에 해독이 안 되는 게 바로 사도행전 20장입니다. 31절도 보십시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7절도 보십시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바울은 대단히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의 글을 보면 그렇습니다. 냉철한 사람입니다. 눈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인데, 3년간 날마다 눈물로 사역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눈물로 기도했고, 그만큼 진실하게 목회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웃으셨다는 기록은 성경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도 우셨습니다. 세 번입니다.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음에서 우셨습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우시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 사역은 절대 눈물 없이는 안 됩니다. 눈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눈물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눈물만큼이나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역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알아주십니다. 저게 가식인지 아닌지 우리도 다 압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진실하지 않으면 사람도 주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우리가 바칠 때 주님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사야 38장 5절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을 때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상달되어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에 하나님이 감동하신 겁니다. 탈무드를 보면,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이삭을 잡을려고 했을 때, 이삭이 제단 위에 누워 울었다는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슴이 미어져 물었습니다. 아들아 무서우냐? 그때 이삭이 말하길, 저는 괜찮은데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알면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그때 이삭이 울먹이며 한 그 말에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급히 천사를 보내 이삭을 잡지 못하도록 아브라함을 붙잡으셨습니다.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뽀송뽀송한 눈으로는 천국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눈물을 반쯤 담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지난 3년간 눈물로 사역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장로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 눈에서 눈물이 마른다고 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사라지면 비정해집니다. 눈물로 사역하십시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눈물의 여왕 막달라 마리아처럼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사역합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눈물의 사역이 푸른교회에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내’입니다. 19절입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아픔은 동족이 줍니다. 집사들의 아픔은 집사가 주고, 교인들의 교통은 교인이 줍니다.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인데 거기에서 조차 유대인들이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지 않고 가시노릇을 했다는 겁니다. 그걸 참고 사역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희도 동족이 주는 아픔을 견디며 사역하라는 당부입니다.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유대인이 주는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도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40번 맞으면 죽으니 율법으로 39번만 때리라고 한 것입니다. 같은 교인이 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사역할 수 없습니다. 무슨 법칙처럼 동족이 주는 모진 아픔이 있습니다. 동족이 주기에 그 아픔은 더 아프고 모집니다. 그러나 이것을 견뎌야 합니다. 바울처럼 위대한 사도도 동족 때문에 내가 너무도 많은 시련을 당했으나 끝까지 인내했으니 너희도 인내하며 사역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피고 사신 몸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에게는 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겸손, 눈물, 인내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몸으로 구현하면 틀림없이 여러분의 사역이 성공합니다.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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