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0m 행한 대로(고후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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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0m
고후 5:8-10
행한대로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훗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까 안 섭니까? 심판 받습니다. 10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즉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다 예외 없이 반드시 필히 심판대 앞에 섭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상급을 받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서 끝나면 좋겠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상급을 준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부담이 되십니까? 마음에 들면 상주고, 마음에 안 들면 벌준다는 걸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반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래 개신교는 가톨릭의 공덕사상에 반발해서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행위나 상급, 공덕, 공적이란 말에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은 믿음으로 공짜로 은혜로 가는 겁니다. 주님 보혈 덕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 노력이나 희생 댓가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 상급은 반드시 이 땅에서 행한대로 받는 응분의 댓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한대로 보상받는 천국의 상급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누구나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의 질은 다 다릅니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이 땅에서의 성화가 천국의 영화를 결정한다는 명제로 정의합니다. 우리는 죽으면 주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르는 상급의 심판입니다. 등급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을 통해 우리의 천국에서의 영화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천국이라 해서 같은 천국이 아닙니다. 거기에도 급수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설마 천국에서까지 차등, 계급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이 땅에서야 온갖 모순과 차별이 있으니 그럴 수 있지만, 천국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모순, 부조리가 없는 절대적으로 공정한 세계이기에 모든 사람의 영광이 다 다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의 내용이 다 다르듯이 우리가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은 다 다릅니다. 그래야 공의로운 것이고 공평한 것입니다. 모태신앙이나 숨 떨어지기 30초 전에 믿은 한 편 강도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같다면 어떻게 공정한 세계이겠습니까? 두 사람 모두 천국은 가지만, 거기서 누릴 영광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처럼 30대에 회심하여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사람과 살인강도가 회개하고 천국 가서 같은 영광을 누린다면 어떻게 공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상급은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믿음의 내용에 따라 달라야 공정한 것입니다.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1절은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 이하에서는 바울이 자신의 신비체험을 얘기합니다. 하늘의 삼층천을 얘기합니다. 바울이 체험한 천국이 층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후 1300년에 쓴 단테의 신곡을 보면 단테도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지옥도 층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9지옥까지 있습니다. 1지옥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습니다. 9지옥에는 가룟 유다와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폭력배들은 제7지옥으로 갑니다. 지옥도 단수가 있습니다. 천국은 10층천입니다. 제일 높은 곳일수록 영화롭습니다. 10층천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9층천에는 천군 천사들, 8층천에는 순교자들과 사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제2지옥에 있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다 급수가 있습니다. 인생들의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옥과 천국이 복잡합니다. 같은 층에서도 수없이 갈라집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므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10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줍니다. 한 사람은 사업을 해서 10므나를 남기고, 또 한 사람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10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10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준다고 했고, 5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5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준다고 했습니다. 이익을 남긴대로 정확하게 보상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10므나를 남긴 종에게 8고을을 주실 수도 있었는데, 10고을을 주셨다는 것은 정확히 보상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상급이고 영광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1절 이하입니다.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 어떤 희생과 수고, 하다못해 냉수 한 그릇의 자선도 공짜가 없습니다. 다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 이하를 보면,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아무 희생도 없는 사람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손해 보지 않은 만큼 편하게 살았기에 자기가 받을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냉정하고 얼마나 공평무사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까? 마태복음 19장 30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합니다. 즉 먼저 믿었다고 상이 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혹 모태신앙을 불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병상에서 회개하고 죽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가장 경제적으로 구원받은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젊을 때 예수 믿은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받은 우리를 여전히 이 땅에 두시는 것은 훗날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을 준비하라는 배려입니다. 좀 더 주를 위해 살라며 말미를 주신 것입니다. 빨리 죽어 천국 가는 것만 능사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 이하는 너무 명쾌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믿는 자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금, 은, 나무, 짚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심판의 불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공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일생 금이나 은으로 집을 지었으면 당연히 불에 안 탈 것이고, 나무나 짚으로 대충 지은 사람의 집은 다 타버릴 것입니다. 만약 그 때 내 집이 불에 타지 않으면 상을 받는데, 불 타 없어져 버리면 구원은 받으나 공적이 불 타 없어져 마치 불 가운데 얻은 것 같다고 합니다. 불 난 사우나나 호텔에서 탈출해 겨우 목숨을 건진 꼴로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운명과 천국에서 누릴 해 같은 영광을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주님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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