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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9년 4월 15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32<br>본문: 히 11:33-34</p>
<!-- paragraph:p0002 -->
<p>[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p>
<!-- paragraph:p0003 -->
<p><br>지난주에는 33절 하반절에 나오는 사자들의 입을 막은 다니엘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이어지는 34절 상반절인데, 불의 세력을 멸한 사람을 공부하겠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풀무불에 던져졌는데도 멀쩡했습니다. 그것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한 상태의 풀무불이어서 집행관은 너무 불이 뜨거워 타죽었는데도 세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3장의 이야기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우선 다니엘의 친구들은 모두 십대의 소년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 4절을 보면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귀족 출신의 영재들입니다. 바벨론은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의 영재들을 볼모로 잡아갔습니다. 바벨론에서 이름까지 바꾸게 하였고, 바벨론의 학문을 가르치고, 문화에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귀국하면 바벨론이 유다를 통치하고 지배하는데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친바벨론 세력을 유다 내에 구축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유다 출신의 영재들을 대거 볼모로 잡아간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바벨론의 이교문화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우상숭배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러한 중심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남다른 지혜를 주셔서 왕의 난해한 꿈을 해몽케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그 누구도 해몽치 못했는데, 다니엘이 해몽하여서 탄복한 왕이 그에게 많은 예물과 관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들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참모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잡기 위해 모함을 한 겁니다. 느부갓네살의 신상을 만들게 하고 거기에 절하며 섬기라는 어명을 내리게 합니다. 만일 이 어명에 따르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걸린 겁니다. 왕이 크게 놀랐지만 그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기회를 줍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신상에 절하면 용서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최후 선처마저도 거절하고 죽기를 각오합니다. 어린 10대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합니다. </p>
<!-- paragraph:p0005 -->
<p>우선 그들의 믿음은 타협을 몰랐습니다. 다니엘 3장 14-15절입니다.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그런데 그들이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16절). 불에 타 죽어도 타협하지 못 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이 타협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날마다 식탁에 오르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오로지 야채만 먹겠다고 해서 결국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면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우상에 바친 제물이었기에 단호히 거부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죽을지언정 우상 앞에 절을 못한다고 합니다. 신앙이냐 타협이냐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언제나 단호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비극이 무엇일까요?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병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십시오. ‘이제라도 우상에게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는데 그런 말씀은 마시라는 겁니다. 죽어도 타협을 모르는 순교적인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p>
<!-- paragraph:p0006 -->
<p>뿐만 아니라 이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그런데도 세 소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저 용광로에서도 우리를 구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17절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왕은 어떤 신도 저 타오르는 풀무불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하는데, 세 소년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건져낸다고 합니다. 못 말리는 신앙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누가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서 구해 낸 분이십니다.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굴에서 구해 내신 분이십니다. 위기로 말하면 이들이 당한 것보다 더 다급한 시련은 없을 겁니다. 혹 지금 혹독한 풀무불 시련을 겪고 계십니까? 지금 사자굴에 던져 진 듯하십니까? 이 소년들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분명히 우리를 건져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들의 신앙의 백미가 아직 남았습니다.</p>
<!-- paragraph:p0007 -->
<p>이들의 신앙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다니엘 3장 18절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7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신다고 했는데, 18절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절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지만, 혹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라서 우리를 구해내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끝까지 신앙의 정절과 순결을 지키겠다는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주님은 요한복음 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배고파도, 주님이 떡을 주시지 않아도 주님을 따르실 수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합니다. 아무리 살고 싶고, 아무리 그 혹독한 시련을 피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당하겠다는 겁니다. 아무리 죽음의 쓴잔을 피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십자가를 지겠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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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렇게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의 진노가 극에 달해,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그들을 던집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은 놀랍게도 불에 타지 않습니다. 게다가 세 사람을 던졌는데, 풀무불 속에 네 사람이 보인 겁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 풀무불을 들여다보며 ‘한 사람은 마치 신의 아들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강림하셔서 그 어린 세 소년을 풀무불 속에서 머리터럭 하나 타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는 천사를 보내셨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경우에는 주님이 친히 오신 겁니다. 다니엘 3장 30절입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그러니까 왕이 이 어린 소년들의 위대한 신앙 앞에 굴복한 겁니다. 이 소년들은 참으로 산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의 신앙을 본받읍시다. 이들의 신앙을 계승합시다. 어른들로서 이 십대들의 신앙에 부끄럼을 느끼며 이 바벨론같은 세상, 시대를 살며 이들의 신앙을 계승합시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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