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소시지와 청어

사순절(四旬節)은 부활절로부터 역산하여 6번의 주일을 뺀 총 40일간의 고난기간을 말하는데 언제나 카니발이 끝나는 <기름진 화요일>(Mardi gras> 다음날,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에 앉아 회개하는 날이라는 뜻의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시작됩니다. 흔히 사육제(謝肉祭)라고 부르는 유럽과 남미의 카니발은 원래 절제와 금욕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고기와의 이별>이 아쉬워 벌이는 종교적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애초의 그 종교적 상징이나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오직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선정적인 볼거리로만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겔(Pieter Bruegel, 1528-1569)은 중세의 사육제와 사순절 광경을 생생한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브뤼겔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지만 네덜란드나 유럽에서는 렘브란트, 고흐와 함께 세기적 거장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성화가 많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설교>, <동방박사의 경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등이 있으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위용의 <바벨탑>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뛰어난 수작으로 꼽힙니다. 그런가 하면 1559년 풍자와 해학으로 그린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캔버스 왼쪽에서는 한창 사육제가 벌어지고, 같은 캔버스 오른쪽에서는 사순절이 지켜지는 그림인데 흔히 이 작품을 <사육제 소시지와 사순절 청어의 싸움>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 대한 독일 출신의 문화예술 작가 <닐스 요켈>의 해설이 재밌습니다. 


<장터 풍경이 소란스럽다. 어린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거지가 ‘한 푼 줍쇼’ 하며 구걸하는 소리, 장사꾼들이 ‘싸게 드려요’ 하며 호객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길모퉁이에는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방금 구워낸 구수한 빵 냄새가 코에 와 달라붙는다. 고기 굽는 냄새, 생선 지지는 냄새가 허기진 장돌뱅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느새 군침이 고인다. 그림 오른편 뒤쪽에 교회 하나가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나무는 무척 앙상하다. 아직 귀 끝이 시린 2월의 어느 날, 사람들이 다 두툼한 옷을 단단히 여미고 있다. 교회 광장으로 거지 떼들이 몰려와 한 푼 적선하라며 아우성이다. 세상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교회를 드나드는 신자들조차도 이젠 거지들을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육제 기간만큼은 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끈을 풀고 부어라 마셔라 했으므로 거지들도 모처럼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즐겁고 풍성한 그 사육제가 끝나면 곧 금식제가 기다린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왼편의 무리들을 이끄는 사내는 술통을 찬 뚱보이다. 뚱보는 이를테면 사육제 진영을 이끄는 장수다. 일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오직 놀고먹는 일에만 혈안인 게으름뱅이들이 모여 뚱보 장수를 선두에 세우고 그 뒤를 따른다. 이들에 맞서 오른편에는 부지런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이 바로 사순절 진영이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자들, 낯색 좋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나온다. 이들은 빨간 나무판자에다 초록색 바퀴를 단 끌차를 따른다. 경건한 사순절 행렬이다. 끌차 위 높은 의자에는 젓가락 같이 빼빼마른 할머니가 타고 있다. 그 할머니가 바로 사순절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다. 할머니를 따르는 아이들은 돼지고기나 소시지에 한 눈을 팔지 않고 교회가 정한 딱딱한 마른 빵을 불평 없이 씹는다. 그리고 할머니가 사육제 진영의 뚱보를 향해 불쑥 삽을 내민다. 나무로 깎은 그 삽에는 말라붙은 청어 두 마리가 얹혀있다. 지금은 금욕과 고행의 기간이니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를 치우고 이 청어를 먹으라는 뜻이다. 드디어 그림 왼편과 오른편에서 사육제와 사순절 행렬이 마주쳤다. 이제 몇 발자국만 더 다가서면 서로 격렬하게 부딪칠 것만 같다.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질 기세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브뤼겔은 이렇게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결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신앙과 현실 간의 치열한 갈등구조를 대비시키며 소시지의 미혹보다는 사순절의 청어를 택하라고 권합니다. 


부디 시련과 고난의 절기인 이 사순절과 함께 우리의 모든 힘든 국면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부활절과 함께 저 겨울의 끝자락 너머로 오고 있는 따뜻한 봄기운을 흠뻑 느끼게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