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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헛된 제물(사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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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이사야 003</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사 1:7-17</p>
<!-- paragraph:p0003 -->
<p class="p1">헛된 제물</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불에 탄 밭들과 파괴당한 성읍들, 전쟁의 참혹한 피해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마치 &lt;포도원의 망대 같이&gt;, &lt;참외밭의 원두막 같이&gt; 조금은 &lt;생존자&gt;들을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과거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멸망했지만 유다는 그래도 하나님이 소수의 남은 자들을 배려하셨습니다. &lt;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gt;(9절). 이사야의 이 &lt;남은 자&gt; 사상은 &lt;남은 자가 돌아 올 것이라&gt;는 뜻을 가진 그의 아들 &lt;스알야숩&gt;의 이름 속에도 이미 반영되어 있습니다(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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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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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짐승의 기름 숫염소의 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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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gt;(11절).</p>
<!-- paragraph:p0009 -->
<p class="p1">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여러 가지 형식적인 종교생활이나 의식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예배하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이 &lt;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gt;고 하신 것 같이 삶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짐승의 피에 목마르시거나 살진 짐승의 고기에 굶주리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과거 유다 백성이나 이 시대 우리들은 그저 형식과 종교의식으로 모든 신앙생활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삶은 전혀 공의롭지 못한대도 주일 예배만 한 번 드리면 자기 할 일을 다 한 양 뿌듯해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lt;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gt;(13절)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의식이나 제물이나 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제사와 제물에 담긴 그 사람의 삶과 중심을 받으신다는 사실과 결코 짐승의 피나 고기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lt;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gt;(13절)고 하셨겠습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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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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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당만 밟을 뿐</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gt;(12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성전 뜰만 어지럽힐 뿐이라는 참으로 냉소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사는 안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신약 히브리서 11장 4절은 그 이유를 &lt;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gt;고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리고 피를 바친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그게 단지 짐승의 고기와 피 뿐이라면 그건 죽은 제사일 뿐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 제사, 신령한 예배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성전 마당만 밟을 뿐 다른 의미가 없으므로 &lt;다시는 가져오지 말라!&gt;고 하신 겁니다. 우리로 하여금 또 한 번 예배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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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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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손에 가득한 피</p>
<!-- paragraph:p0016 -->
<p class="p1">&lt;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gt;(15절).</p>
<!-- paragraph:p0017 -->
<p class="p1">이 말씀도 참 충격적입니다. 아예 기도를 안 하거나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많이 했음에도 안 들어주시겠다고 합니다. 왜요?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손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악하고 그 삶이 전혀 정직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17절을 보면 당시 그들의 잘못된 행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의를 일삼고 정직하지 못하고 학대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고아와 과부를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그런 악행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23절에서 다시 반복하여 성토했겠습니까? &lt;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gt;. 교회 안에서는 그럴듯한 표정으로 신앙인 행세를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철저한 세속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하나님이 지금 역겨워하고 계신 겁니다. 따라서 이런 자들에게 있어서의 신앙이란 곧 미신에 지나지 않다는 게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입니다. 당신의 예배생활,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부디 올 한 해 당신이 바치는 모든 예배가 헛된 제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향기로운 산 제사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