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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9년 4월 12일 주일낮예배/부활주일<br>본문: 눅 24:1-12<br>제목: 안식 후 첫날 새벽</p>
<!-- paragraph:p0002 -->
<p>[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p>
<!-- paragraph:p0003 -->
<p><br>부활절을 맞으신 부활의 새 생명과 산 소망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br>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만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혼도 죽었습니다. 영혼도 지옥에 가셨습니다. 스위스 바젤 대학의 오스카 쿨만 교수는 만일 주님이 육체만 죽었다면 그것은 절반의 구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영혼의 죄는 누가 사하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주님이 지옥에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 대신에 지옥의 형벌을 대신하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 영혼의 죄를 사할 수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이 영혼의 죽음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 앞에서 여유를 부렸던 겁니다. 그는 죽음의 진정한 비밀을 몰랐습니다. 죄인으로서의 죽음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 죽음이 얼마나 처절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아셨기에 피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육체도 영혼도 다 죽으셨고, 지옥에 가셨습니다. 그 지옥이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죄뿐만 아니라 영혼의 죄도 대속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래서 전인적인 죽음, 통전적인 죽음, 육신과 영혼의 죽음을 뜻합니다. </p>
<!-- paragraph:p0004 -->
<p>주님이 언제 부활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1절 상반 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주님은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옛날 유대교는 안식일, 즉 토요일을 성일(聖日)로 지켰지만, 우리는 일요일을 성일로 지키면서 주일(主日)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이라고 명명하기보다 주일이 더 낫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 며칠 걸리셨습니까? 주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못 박히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으니까 사흘 만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합니다. </p>
<!-- paragraph:p0005 -->
<p>그런데 왜 사흘입니까? 이것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사흘간 지옥에 계시는 것으로써 인류의 죄를 충분히 상쇄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틀 계시기에는 우리의 죄가 너무 중했던 것입니다. 삼일동안 지옥의 형벌을 받으시는 것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왜 사흘이면 족했을까요? 예를 들면 구약시대 때는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양 한 마리의 피를 바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죗값을 치르려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살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전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대속하신다면서 지옥에 삼일 간 계시는 것으로 족했을까요? 주님의 피는 보혈(寶血)이기 때문입니다. 보혈은 보배로운 피라는 뜻입니다. 유대교도들이 바쳤던 피는 짐승의 피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피를 바친다면 이것은 죄인의 피 입니다. 이것은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주님의 피는 전혀 죄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피 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짐승과 인류의 피를 다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 한 방울과 바꾸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예수님은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예수님이 지옥에 한 30분만 계시면 될 법한데, 우리 죄가 중하다보니 그 보혈의 피를 바치고도 3일간이나 지옥에 계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보배로운 피를 바쳐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단번에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새 생명의 길을 터 주셨습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래서 오늘 새벽에 부활하신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주님이 지옥에 가심으로써 내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셨다는 것, 이 사실의 보증이 부활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나와는 상관이 있습니다. 내 죄, 허무, 심판, 영원한 저주의 문제를 주님이 지옥에 가서 대신 당하심으로 완전하고 완벽하게 해결하셨다는 증거가 바로 주님의 부활입니다. 둘째,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나도 장차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농부들은 과수를 밭에다 심어 놓고 날마다 고대하는 것이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는 이제 다음 해부터 매해 열매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시대를 여신 겁니다. 그 다음 열매로 우리도 부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텐데, 이제 우리 영혼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은 천국에 갑니다. 잠정적인 삶을 살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천국에 있던 나의 영혼과 무덤에 있던 육신이 만나 부활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신천신지에서 영생합니다. 이런 부활의 산 소망을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겁니다. </p>
<!-- paragraph:p0007 -->
<p>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고된 현실을 이기시며 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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