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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사랑과 구원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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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잔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권력의 기반이 약했던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안 황제 때가 심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정책 실패나 국가적인 재난이 닥칠 때마다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당시의 법률가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lt;테베강이 범람하거나 나일강이 말라 들판에 물을 공급하지 못할 때라든가 지진이 발생하거나 전염병이 돌면 어김없이 기독교 신자들을 붙잡아 사자 밥이 되게 했다&gt;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정점에 이른 때는 데키우스 황제 시절인 250년 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체포한 기독교 신자 가운데서 로마 시민권자들은 참수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원형극장의 굶주린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참수한 신자들의 사체는 며칠 간 광장에 내걸었다가 불태워 없앴습니다. 이토록 극악한 탄압과 박해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때까지 무려 270년 간이나 계속 됐는데 이 기간을 우리는 흔히 &lt;카타콤 시대&gt;라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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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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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최악의 박해 상황에서도 정작 기독교 신자의 수는 꾸준히 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박해가 끝날 무렵에는 일반인들 뿐 아니라 기독교인 색출과 처형에 동원됐던 로마 군인들까지도 상당 수 기독교 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lt;그들은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누구도 돌보지 않는 고아와 나이많은 노예들, 파산한 선원들, 감옥에 갇힌 죄수들, 떠돌이 부랑자들이 다 그 기독교인들의 사랑의 대상이었다.&gt; 그렇습니다. 초대 기독교 신자들의 그 지독한 사랑이 로마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그 무한 박애주의가 극단한 쾌락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있었던 당시 로마 사회에 진한 감동을 준 것입니다. 또 그것이 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가는 발단이 되기도 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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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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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지난 주 수요일 성서개론반에서 뮤지컬 영화 &lt;레미제라블&gt;을 관람했습니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을 노래한 &lt;레미제라블&gt;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언 가슴을 녹여 준 따뜻한 순정의 강물이었습니다. &lt;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gt;의 앤 해세웨이가 판틴 역을 열연하며 부른 &lt;I Dreamed a Dream&gt;이 한 가련한 여인의 흐느낌이 되어 관객들의 가슴에 화살처럼 와 박히고,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가 혁명의 불길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며 &lt;그들을 살려 주시고 대신 저를 데려가 달라&gt;고 한 장발장의 간절한 기도 &lt;Bring Him Home&gt;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그 영혼을 팔았다면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신부의 사랑은 장발장 안에서 분노로 이글거리던 악마의 영혼을 샀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우리 모두에게 이 모진 겨울 훈훈한 마음의 촛불을 지피라고 합니다. 제목처럼 &lt;불쌍한 사람들&gt;, 작은 이들의 진정한 벗이 되라고 합니다. 인간의 숭고함이란 장발장이 가엾은 고아 코제트를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헌신하고, 원수인 자베르 경감을 용서하듯 그렇게 남을 사랑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장발장을 거듭나게 한 비엥브뉘 미리엘 신부가 주교로 임명되어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며칠 후 그가 어느 자선병원을 찾아가 원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lt;당신 병원에는 방이 대여섯 밖에 안 되는데도 사람은 26명이오. 나는 불과 세 명이 사는 집인데 60명이 들어가도 남습니다. 바꿉시다. 이제 저 주교관이 당신의 병원이오!&gt; &lt;레미제라블&gt;은 이 삭막한 시대의 모든 종교인들, 부자들, 권력가들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가 뼈아프게 들어야 할 &lt;사랑과 구원&gt;의 대서사시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