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90405n: 비운의 무화과나무(막 11:12-25)

2009년 4월 5일 주일오후찬양예배
본문: 막 11:12-25
제목: 비운의 무화과나무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 종려주일입니다. 왜 종려주일이라고 하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마치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는 평화와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군대가 개선할 때 항상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또한 왕이 행차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을 이렇게 환영한 겁니다.

저녁에 주님은 성 밖으로 나가셔서 나사로의 집에 머무십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데 그 때 예루살렘 가두에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13절 하반절입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시기적으로 그 때는 아직 무화과가 열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 철이 아니어서 열매를 못 맺은 것뿐인데, 그런 나무에다 대고 저주를 하신 겁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뿌리 채 말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화과 철을 모르고 실수하셨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 이상합니다.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주님의 정서와 맞지 않습니다. 주님은 과격한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리 나무지만 저주해서 뿌리 채 마르게 하신 사건은 주님의 품성과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겁니다.

또 하나 살펴볼 것은 편집구조입니다. 본문은 12-14절까지 그리고 20-25절까지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이 끼어 있습니다.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여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왜 철도 안 된 무화과를 찾으셨고, 또 성품에 걸맞지 않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또 왜 본문을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성전숙정 사건을 집어 넣었을까요?

무화과 잎사귀는 당시 열매 없던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경고하려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희생의 제물을 삼았습니다. 때가 아직 아니었음에도 무화과나무에 가서 열매를 찾으신 겁니다. 그리고 가혹하게도 뿌리까지 마르게 하신 겁니다.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예루살렘 거민들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의 열매 없는 신자들에게도 최후의 경고를 하신 겁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하룻밤 새 이렇게 말라버렸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서도 주님은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해버린다고 했고, 마태복음 3장 10절에서는 이미 도끼가 포도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하십니다. 무화과나 포도나무는 열매 밖에 쓸 게 없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으면 거의 무가치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열매 없는 성도들에게도 주님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신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바라신 진정한 신앙생활의 열매는 어떤 것일까요? 우선 믿음의 열매입니다. 22-23절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또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합니다. 위선 떨지 말고 정말 산이라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열매를 맺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께는 잎사귀는 통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잎사귀가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외식과 위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주님이 그들을 신랄하게 고발한지 모릅니다. 외식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다음은 기도의 열매입니다. 24절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십니다. 형식이나 요식적인 기도 말고, 믿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진정한 기도 생활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기도는 철저히 위선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 사람들은 시장에서 기도했습니다.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금식했습니다. 이건 다 잎사귀지 열매가 아니라는 겁니다. 기도의 진정한 열매를 맺으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그렇게 버림 받는다고 경고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용서하는 삶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25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 누군가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는 열매는 용서의 열매입니다. 신자들은 모두 주님께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게 100데나리온 빚진 이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나는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의 열매, 용서의 열매에 목말라 계십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열매를 주문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기만하지 마십시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나 막상 속은 아무 열매 없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같은 비극적인 성도가 되지 맙시다. 믿음, 기도, 용서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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